모리 감독이 첫 부임한 그해, 고교 최고의 대형타자 기요하라 가즈히로(한국계)가 세이부에 입단했다. 6월 중순까지 적응을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그를 2군에 내리지 않고 주변의 비난을 무릅쓰고 계속 기용했다. 뿐만 아니라 합숙소를 무단이탈해 외박을 하다 언론에 노출되면서 일본 특유의 요란스런 스캔들 기사가 떠도 모리 감독은 “아직 어리고 젊은 호기심으로 그럴 수 있다”고 기요하라를 감싸고 기용했다.
사실 세이부는 최강전력을 갖춘 전년도 우승팀임에도 불구하고 관리야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을 모리 감독으로 교체한 첫해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다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팀 순위도 퍼시픽리그 5위에 간신히 걸쳐있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모리 감독은 두꺼비 같은 자세로 기요하라의 재능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7월이 오면서 결국 그의 활약이 팀을 상승세로 이끌며 막판 극적으로 리그 우승을 이루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해 3연패 후 4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허조그 감독은 한술 더 떠 곰같은 인내심으로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끌고 갔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당시 메이저리그는 동부지구와 서부지구 2개 지구로 운영)에서 하위전력으로 평가받던 카디널스가 20승의 드와이트 구든, 홈런왕 대릴 스트로베리 등 쟁쟁한 멤버로 짜여진 뉴욕 메츠를 제치고 지구 우승, 나아가 내셔널리그 우승을 한 과정도 재미있다.
마무리투수 토드 워렐이 6월까지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범으로 팀을 말아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연일 반복되는데도 허조그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7월에 접어들어 자신감을 찾은 워렐의 활약으로 막판 대역전을 이룬다.
물론 그들에 비해 경기수도 적고 진행방식도 단축 마라톤 같은 우리 프로야구와는 차이가 있어 그런 장면을 여기서는 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6, 7월 갈매기의 행보를 보니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서 해본 얘기다.
야구인
프로야구의 기본철학은 마라톤과 같다. 하루에도 죽었다 살았다를 수없이 외치며 산넘고 물건너 구비구비 돌아가는 인생의 축소판에서 팬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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