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2002년 5월. 한일 월드컵 대표 선수 최종 명단이 발표되자 앳된 얼굴의 한 청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시 23세의 이동국.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졌다는 평가를 받던 그에게 대표팀 탈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체격이 좋고 골 감각도 있지만 정신력과 집중력이 약한 게 아쉽다”며 탈락 배경을 설명했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온 국민에게는 축복이었지만 이동국에게는 좌절이었다. 그는 “한국팀 경기를 하나도 보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낙담했다. 다른 대표팀 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누리며 해외무대로 진출하던 2003년 이동국은 조용히 군에 입대했다.
#장면2=2006년 4월. 이동국은 또 한 번 좌절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기 중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프로축구와 대표팀 경기에서 맹활약하던 그의 대표팀 발탁은 당연한 듯했다. 이동국 역시 “군대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이동국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 골 폭풍 몰아치며 대표팀 재승선 단꿈
영영 못 달 것만 같던 태극마크의 꿈이 다시 손에 잡힐 듯하다. 최근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는 이동국(30·전북 현대) 얘기다. 올해 초만 해도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멀어진 듯했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부활했다. 정규리그 13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며 득점 1위. FA컵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득점 2위다. 사상 첫 정규리그와 FA컵 득점왕 석권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동국의 득점 시위가 계속되자 자연스럽게 대표팀 재승선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일단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허 감독은 “이동국은 장점이 많은 선수지만 활동량 등 보완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며 “좀 더 지켜본 뒤 선발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동국을 지켜본 프로축구 감독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들은 “대표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감독마다 추구하는 경기 스타일이 달라 그에 맞는 선수를 뽑는 것은 대표팀 감독 고유의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사에 응한 9개 구단 감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명은 현재 이동국의 기량이 대표팀 수준에 도달했다는 데 동의했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지금의 이동국은 한창 때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강원 FC 최순호 감독도 “지금 기량이라면 대표팀에 승선시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축구 감독들은 ‘본인이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동국을 뽑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5명이 ‘더 지켜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기량도 중요하지만 팀의 전체적인 조직력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감독은 “박지성 등 몇몇 선수를 주축으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 대표팀에 이동국을 넣는다면 조직력을 재조정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들은 이동국이 대표팀 명단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는 ‘더 많은 활동량’(4명)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가 과거에 비해 움직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받아먹는 골’이 많다는 얘기다. 이 밖에 ‘드리블 및 돌파력’(2명), ‘체력’(2명)도 이동국이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최준호 인턴기자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