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광수(28)의 얼굴과 이름은 아직 낯설다. 2000년에 입단했으니 어느덧 프로 10년차. 하지만 1군에서 뛴 경기를 다 합쳐도 80경기가 채 안 된다. 야구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증거다. 두 번의 긴 공백, 그리고 수차례의 고비. 그래도 그는 먼 길을 돌아 결국 LG 마운드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곱상한 외모 뒤에 천생 남자다운 뚝심을 감추고 있는 김광수는 “계속 기회가 주어지는 지금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인천의 신동’에게 닥친 수술의 시련
프로 선수치고 학창 시절에 야구 못한 사람 없다. 김광수도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인천의 ‘야구 신동’으로 통했다. 유격수였던 그가 투수로 전향한 건 인천고에 입학하면서부터. LG는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김광수를 2차 2번으로 지명했고, 계약금 1억3500만원을 안겼다. 하지만 정신없이 데뷔 첫 해를 보내자마자 팔꿈치 수술이라는 악재가 닥쳤다. 1년을 통째로 재활했고, 2002년에도 단 한 경기에만 나섰다. 혈기가 펄펄 끓는 젊은 투수에게는 가혹한 공백이었다. 그래서 2003 시즌(83이닝·4승7패1세이브)에 보여줬던 가능성이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3년간의 공백, 그리고 김용수 코치
그러다 병역비리가 터졌다. 2004년 말이었다. 원치 않은 공백, 그리고 이어진 공익근무. 처음으로 야구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동안 야구공과 글러브를 손에서 놨다. “야구 중계조차 한 번도 안 봤어요. 휴가 때는 여행을 떠났고요.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머리를 비웠죠.” 몸이 근질근질해 다시 운동을 시작한 건 그 다음해부터.
하지만 이번엔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생각은 충만한데 모든 게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감각’을 되찾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공을 던지는 건 둘째 치고, 1루 견제나 수비 동작까지 하나하나 낯설었으니까요.” 점점 몸에 힘이 빠져갈 때쯤, 2군에서 다시 만난 김용수 투수코치가 큰 힘이 됐다. 그가 농담 삼아 “내가 김 코치님의 첫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 둘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열아홉 김광수의 신인 시절, 마지막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불혹의 김 코치는 그의 원정경기 룸메이트였다. 그가 웃으며 회상했다. “선배님이 주무실 때까지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자자’ 하시면 불 끄고 잤죠. 게다가 아침에는 또 얼마나 일찍 일어나시는지….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그 시절이 결국 사제 간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열매’가 된 셈이다.
○극적인 전지훈련 ‘막차 합류’
그래도 고비에는 끝이 없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점점 자리를 잡아가던 지난해 8월, 올스타 브레이크 때 러닝을 하다 발목을 접질렸다. 3개월 동안 꼼짝없이 재활만 했다. 그래도 전지훈련 참가자 명단에서도 제외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사이판으로 먼저 출국한 투수조의 뒷모습을 보며 아쉽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다. 또 한번 기회가 왔다. 야수조가 출국하기 하루 전, 김재박 감독과 다카하시 투수코치가 구리 구장을 찾았다. 그리고 김광수에게 공을 한 번 던져보라고 했다. 이를 악물고 던졌다. 결과는 합격. 그렇게 극적으로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그 때 다친 발목이 여전히 가끔 시큰거리지만, 그는 “이 정도쯤은 참고 던질 수 있다”고 했다.
○10년지기 여자친구와 올 시즌 후 새출발
혼자였다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광수 곁에는 모든 풍랑을 묵묵히 함께 이겨내 온 ‘동반자’가 있었다. 김광수는 오는 12월 12일에 10년간 만나온 여자친구 임 모(28) 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고, 야구장 나들이도 좀처럼 하지 않지만, 야구선수 남자친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여자친구다. 게다가 직업이 은행원이라 재테크에도 능하다.
시종일관 담담하게 얘기를 풀어가던 김광수의 눈빛에도 이때만큼은 자랑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얼마 안 되는 제 연봉을 착실하게 불려주는 것도 여자친구예요. 내 돈은 한 푼도 안 쓰나 봐요.” 남들은 10년이라는 세월 자체를 신기해한다지만, 정작 그는 단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5개월 후면 평생을 약속한다.
○김광수가 잊지 못하는 ‘스포트라이트’
그에게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 하나가 있다. 이승엽(요미우리)이 삼성에서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하던 2003년. 시즌이 단 3경기만 남은 상황에서 김광수가 잠실 삼성전 선발로 예고됐다. 공교롭게도 이미 이승엽에게 54호 홈런을 내준 후였다. 별 생각 없이 잠실구장으로 향했던 ‘무명 투수’ 김광수에게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 나한테 너무 많은 관심이 쏟아지니,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말하자면 ‘인생 최대의 스포트라이트’였던 셈이다. 결국 56호포의 제물이 되는 ‘봉변’은 피했지만, 그 날의 당황스러움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6년이 흘렀다. 올해 그는 23경기에서 57.1이닝을 던졌고, 3승4패1홀드에 방어율 5.81을 기록 중이다. 최상급 성적은 아니다. 밝게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날 만큼이나 고개를 푹 숙인 채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다.
경기를 마치고 야구장을 빠져나갈 때면, 여전히 많은 팬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래도 그는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쑥스럽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변함없이 씩씩하게 공을 던진다.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마운드에 오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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