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삼성-FC서울의 K리그 18라운드. 후반 6분, 수원이 상대 오른쪽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어내자 주장 곽희주(28)는 안영학(31)에게 잠시 귓속말을 건넨 뒤 키커 김대의(35)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선수들의 시선은 일제히 곽희주에 쏠렸지만 볼은 의외로 텅 빈 페널티 중앙으로 향했고 안영학은 침착한 오른발 슛으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뒤 자신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서포터 석을 향해 질주했다. 이어 A보드까지 뛰어 넘어 골대 뒤를 가득 메운 푸른색 물결 앞에서 맘껏 포효했다. 평소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그에게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 안영학은 3만5058명이 운집해 올 시즌 K리그 최다관중 기록을 세운 이날 수원 유니폼을 입고 홈 팬들 앞에서 첫 골을 터뜨렸다.
○이제는 ‘주연’
수원은 지난 시즌 K리그와 컵 대회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안영학은 철저한 ‘조연’이었다. 올 시즌 전반기도 6월 K리그 휴식기 전까지 고작 1경기 교체 출전이 전부. 월드컵 본선에 오른 북한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면서도 소속 팀에서 뛰지 못한다는 게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이 와중에 올 여름 J리그 이적설이 불거졌지만 오히려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안영학은 팀에 꼭 필요하다. 후반기에 중용할 것이다”며 이적시킬 뜻이 없음을 밝혔고 6월 28일 울산 원정에 선발로 내보내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안영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울산전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며 수원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2-3으로 역전패했지만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는 데는 충분한 활약. 안영학은 이후 수원이 치른 정규리그 4경기 중 3경기에서 풀타임을 뛰었고 이 경기에서 팀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실력에 인덕까지 갖춘 청년
수원 관계자들은 “안영학은 누구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차 감독이 “언제든지 투입해도 될 정도로 준비가 잘 돼 있다”고 평할 만큼 성실한 태도는 기본. 벤치에서 한참 몸을 풀다가 결국 투입되지 못해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선수에게 항상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준다.
안영학이 “지금까지 팀에 보탬을 주지 못했는데 이제야 수원의 일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6강에 들어 지난해 챔피언의 모습을 찾겠다”고 소감을 밝힌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자 수원 관계자들은 뒤에서 일제히 “안영학 파이팅”을 외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수원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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