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프로야구에도 투수의 투구수가 매우 중요한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방송 캐스터와 해설자는 이닝마다 투구수를 시청자와 청취자에게 알려준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나온 진화된 변화 가운데 하나다. 요즘 선발 로테이션을 무시하는 팀은 없다. 그래서 투구수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선발로 국한시켰을 때 투구수는 과연 몇개가 적정할까. 정답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를 두고 ‘피칭의 매직넘버’는 몇 개인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끼리 격론을 펼 정도다. 메이저리그는 100개를 기준으로 삼아 110여개 정도를 적정선으로 삼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문가들은 투구수가 100개 이상을 넘을 때 어깨 팔꿈치 등에 부상 위험도가 커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 투구수인가
메이저리그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부상자명단(DL)에서 돌아온 투수는 첫 경기에 5이닝, 투구수 80개 안팎에서 교체한다. 구원투수가 30개 이상 던졌을 때는 연투를 피한다. 선발투수의 경우 투구수가 120개 이상을 넘었을 때는 평소보다 하루 더 휴식을 취하게 한다. 감독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 있으나 30개 팀 대부분의 감독들이 이 방식을 취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문가들은 ‘황금의 왼팔’ 샌디 쿠팩스가 요즘과 같은 투구수를 적용했다면 300승은 무난히 거뒀을 것이라고 한다. 쿠팩스는 짧은 메이저리그 12년 동안 한시즌에 300이닝 이상을 3차례나 기록했다. 결국 66년 27승을 거두고 이 해 12월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쿠팩스는 통산 165승을 거뒀다.
○감독의 투구수 관리
구단과 감독이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수한 투수를 오랫동안 마운드에 서게 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투구수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LA 다저스 조 토리 감독이 좌완 클레이튼 커쇼의 투구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커쇼는 다저스가 ‘제2의 샌디 쿠팩스’로 꼽고 구단 차원에서 육성하는 투수다.
1988년생인 커쇼는 지난 시즌 중반 데뷔해 21경기에 선발등판했다. 한 경기에 100개 이상의 투구를 한 게 딱 두차례다. 108개가 최다 투구수였다. 올해는 100개 이상을 12차례 던졌다. 최다 투구수는 112개였다.
지난 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프리에이전트로 영입한 구로다 히로키도 철저히 관리를 하고 있다. 구로다는 지난해 정규시즌에서 100개 이상 던진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시즌 최다 112개를 투구한 바 있다. 구로다는 일본에서 1주일에 한번씩 던졌던 투수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한경기 평균 최다 투구수를 기록한 투수는 디트로이트의 저스틴 벌랜더로 109.5개다. 절대 많은 투구수가 아니다.
○류현진-김광현-커쇼
류현진은 87년생이고, 김광현은 커쇼와 같은 88년생이다. 이들은 1군 프로무대에 커쇼보다 일찍 데뷔했다. 앞으로 류현진, 김광현, 커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신체조건이나 좌완으로서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투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왼손등을 다쳐 전력에서 이탈해 있는 SK 김광현은 올해 21경기에 등판했다. 투구수를 살펴봤더니 100개 이상을 15차례 던졌고, 120개 이상은 4차례, 130개도 한차례 있었다. 5월22일 두산전에서 134개로 시즌 최다 투구를 한 적이 있다. 한화 류현진은 21경기에서 100개 이상의 피칭을 17차례 했다. 120개 이상은 5차례였다.
SK 김성근, 한화 김인식 감독이 두 투수의 투구수를 조절하려고 애쓰는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와 견주면 많은 투구수다. 과연 어떤 투수가 롱런을 할 수 있을지는 세월이 흐르면 알 수 있다. 국내의 에이스급 투수들은 메이저리그보다 프라임타임이 매우 짧다. 이유는 혹사 탓이다. 한 때 언히터블 투수였던 삼성의 박충식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롯데 송승준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배려로 투구수가 많은 편이 아니다. 22경기에서 100개 이상을 10차례 던졌고, 110개 이상이 5차례, 120개 이상을 던진 적은 없었다.
○무엇이 혹사인가
현 신시내티 레즈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시카고 컵스 시절 우완 마크 프라이어를 혹사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프라이어는 2001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2번으로 시카고에 지명된 유망주였다. 데뷔 2년째인 2003년 30경기에 등판해 18승6패 방어율 2.86을 기록하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해 프라이어는 30경기 가운데 26차례에서 100개 이상의 투구를 했다.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인 9월에는 130개 이상의 피칭을 3차례나 했다. 120개 이상만 해도 9번이나 던졌다. 요즘 잣대로는 분명 혹사다.
베이커 감독의 혹사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프라이어는 2003년 이후 2005년 11승을 끝으로 어깨부상으로 사실상 야구계에서 사라졌다.
LA|문상열 통신원
[관련기사]채태인 목동 속앓이 “굿 할판…”
[관련기사]자동차로 풀어본 9연승 KIA의 ‘9가지 비밀’
[관련기사]김동주 뜨면 에이스들 벌벌 왜?
[관련기사]롯데 ‘캡틴’ 조성환이 돌아온다
[관련기사]우승의 유혹… 감독의 ‘선수 죽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