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벌려고 클럽 웨이터-공사장 막노동 하루 12시간 스윙… 비닐하우스 파이프 활용도 “이런 순간 올 줄 상상도 못했는데…” 눈물 2006년 11월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을 일본 미야자키의 한 횟집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유럽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타이거 우즈(미국)의 7연승을 막고 우승해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을 때였다. 그 후 일본 대회에 출전하고 있던 그는 힘들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털어 놓으며 새 각오를 밝혔다. “제주도에서 어렵게 감귤 농사를 하던 부모님이 저를 낳았는데 몇 분 후에 딸이 또 나왔어요. 제 쌍둥이 동생이었죠. 가난한 살림에 형제도 많았으니…. 늘 배고프고 힘들었죠. 아직 갈 길이 멀어요.” 17일 제91회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챔피언에 오른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고향 제주의 강한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뒹구는 돌멩이처럼 험난한 인생 역정을 거쳤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쌍둥이 동생보다 1년 먼저 학교를 갔어도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학비라도 아낄 생각에 보디빌더를 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990년 고교 졸업 후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골프 연습장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볼 보이 생활을 시작한 게 골프와의 인연이었다. “웬 골프냐”며 나무라던 아버지의 권유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왼쪽 무릎을 다쳐 병원 신세를 졌다. 해안경비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91년 제대 후 제주 오라골프장에서 본격적으로 골프에 매달렸다.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휘두르고 하루 12시간씩 공을 치며 독학으로 스윙을 익혔다. 그 결과 1996년 프로 테스트에서 결원이 생겨 추가 합격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열악한 국내 프로 현실에 부닥쳤다. 1997년 신인왕에 올랐어도 시즌 상금은 590만 원에 불과했다. 1999년 박영주 씨와 결혼한 뒤 프로 투어 생활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두 아들과 보증금 25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 생활을 했다. 그해 상금 9위를 했어도 금액은 1800만 원. 서른이 넘은 2002년 SBS 프로최강전에서 국내대회 첫 승을 올린 그는 2004년 일본 투어에 진출해 4승을 거뒀다. 2006년 HSBC 우승으로 유럽투어 출전권을 따내며 단번에 7억 원 가까운 상금을 벌었다.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7년 3수 끝에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출전 자격을 얻었다. 지난해 11차례나 예선 탈락하며 상금 157위에 처져 시드를 잃었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다시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 올 시즌 PGA투어 재진입에 성공해 3월 혼다클래식에서 꿈에 그리던 첫 우승을 이뤘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스윙 교정에 나서 템포를 늦추고 쇼트게임을 강화한 덕분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두 달 전 미국 서부 팜스프링스에서 낯선 땅인 중부의 댈러스로 이사했다. 이동 시간을 줄여 체력과 시차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어렵게 지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2006년부터 모교인 제주고(옛 제주관광산업고)에 장학금을 지급하며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공부에 미련이 많아 최근 만학의 길을 걷기 위해 고려대에 입학 지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PGA챔피언십 우승이 확정된 뒤 양용은은 함께 고생했던 아내와 포옹을 하며 비로소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이런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꿈을 꾸는 게 아닐까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