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 野]4년 방황… 아픈 만큼 성숙해진 조라이더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최고 구속 140km의 슬라이더는 예술이었다. 웬만한 투수의 직구 스피드와 맞먹는 속도로 날아오다 예리하게 꺾이는 공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2002년 현대 유니폼을 입은 조용준은 그해 9승 5패 28세이브에 평균자책 1.90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평생에 한 번 받을 수 있는 신인왕은 그의 몫이었다. 팬들은 명품 슬라이더를 던지는 그를 ‘조라이더’라고 불렀다.

2004년은 그의 전성기였다. 정규리그에서 10승 3패 34세이브를 올린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상대로 7경기에 등판해 3세이브를 거뒀다. 12와 3분의 1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는 그의 몫이었다.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역대 4년차 최고인 2억 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어깨에 탈이 났다. 수술과 재활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에는 히어로즈가 제시한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자 외부와 연락을 끊고 몇 달 동안 잠적하기도 했다. ‘이제 조용준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 건 당연했다. 그는 잊혀져 갔다. 조용준은 “재활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한때 야구를 포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힘들게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조용준은 16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430일, 약 4년 만에 다시 마운드에 설 기회를 얻었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당분간 그를 중간 계투로 활용할 계획이다.

“저를 잊지 않고 격려해 주신 팬들이 있어요. 그분들께 꼭 마운드에 서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공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보답이에요.”

조용준은 18일 KIA전에서 2-9로 뒤진 8회 등판했다. 이기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1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가능성을 보여줬다.

조용준의 미니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아픔을 알아야 행복이 배가 되지 않을까.’ 어느새 서른이 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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