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농구 코트에 부는 ‘공부바람’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프로농구 삼성 안준호 감독(53)은 선수 시절 ‘훈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남다른 노력으로 한자 실력을 키워 국제 대회나 전지훈련으로 출국할 때면 동료들의 신고서까지 대신 작성해 줬다. 당시에는 운동선수들이 공부는 거의 안 하던 시기여서 한자로 자신의 이름을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인데도 영문 이름조차 모른다는 언론의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때였다.

하지만 요즘 안 감독의 아들뻘 되는 후배 선수들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운동도 할 수 없게 됐다. 18일 개막된 고려대 총장배 전국남녀농구선수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자와 한국사 국가검정시험에서 6급 합격증을 받은 선수만 출전하고 있다. 한국중고농구연맹이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지난해부터 이런 방침을 각 팀에 전달한 뒤 처음 시행에 들어갔다. 단국대사범대부속고 최명도 코치(37)는 “우리 때는 학창 시절 1교시에 인사만 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요즘은 오전 수업은 모두 듣게 하고 특별 과외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불합격자도 팀당 2명씩 두 쿼터만 뛸 수 있도록 경과 규정을 뒀지만 낙방생이 많은 팀은 전력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챔피언 무룡고는 평균 30점 가까이 넣던 간판 센터가 시험에 떨어져 예선 첫 경기에서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다. 반면 안 감독의 모교인 광신정산고와 인성여고 등은 선수 전원이 합격했다.

중고연맹 박안준 사무국장은 “합격률은 70% 수준이다. 학업 분위기 조성에 큰 효과가 있다. 앞으로 영어까지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내 스포츠는 학교 체육의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운동만 하다 그만두면 방황하기 쉽고, 일찍 꽃을 피운 뒤 목표를 상실해 쉽게 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농구 스타 출신으로 금융기관 사장까지 지낸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73)는 “1950년대의 교육제도가 지금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학생은 본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농구 코트의 ‘공부 바람’이 전체 학원 스포츠 변화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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