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세계기록이 2시간5분42초(할리드 하누치·1999년)에서 2시간3분59초(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2008년)로 줄어들었음에도 이봉주의 한국기록(2시간7분20초·2000년)은 제자리. ‘마라톤 영웅’ 황영조, 이봉주로부터 한국마라톤의 부진이유와 대안을 들어봤다.
○ 한국마라톤, 꿈이 있는 선수가 없다
황영조 감독은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의 목표의식 부재”라고 못 박았다. 90년대 코오롱이 적극적으로 마라톤에 투자했지만, 현재는 그 이상이다. 신기록 포상금도 더 많아졌다. 황 감독은 “과학화 등 훈련시스템 역시 한층 정교해졌다”고 했다. 이봉주 역시 “운동의 여러 조건들이 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 얇아진 선수 층. 선수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보니, 국내 대회에 집중하면 성적내기가 쉬워졌다.
베를린에서 경기를 지켜본 한 육상인은 “선수들이 어차피 성적이 안나올 세계선수권에 집중하기보다 가을로 예정된 국내대회에 컨디션을 맞추는 인상이었다”고 했다. 국제대회에 초점을 맞추는 선수 자체가 없다보니 독기가 사라졌다. 황 감독은 “예전에는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했지만, 요즘은 2시간 10분대에만 들어와도 만족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훈련량 자체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봉주는 “예전에는 5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는데, 젊은 후배들은 그 절반만 뛰어도 손사래를 친다”고 했다.
○ 한국마라톤, 씨앗부터 다시 심어라
90년대 한국마라톤의 황금기에는 황영조, 이봉주 뿐 아니라 김이용, 백승도, 김재룡, 김완기 등이 정상을 위협했다. 이봉주는 “그 때는 경쟁체제 속에서 기록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대부분이 중장거리에서 탄탄하게 스피드와 지구력을 닦은 뒤 마라톤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경우. 이는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유망주들을 집중 육성한 80년대의 유산이었다.
그 저변 속에서 경쟁체제가 생기고, 세계수준의 선수들이 탄생했다. 2011년까지 남은 시간은 단 2년. 현격한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황 감독은 “지금이야 말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10년의 계획을 세워 씨앗을 뿌려야 할 시기”라고 했다.
그 첫걸음은 유망주 발굴.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던 황영조는 고교 때 육상으로 전향했고, 마라톤 풀코스 입문 2년 째 4번째 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1년, 대구의 영광도 꿈만은 아니다. 이봉주는 “유망주 발굴만큼이나 관리도 중요하다”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2의 황영조’라고 불리던 모 선수는 불성실한 훈련태도로 결국 올 초 소속팀에서 방출된 전례가 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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