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톈진 악몽’ 벌써 잊은 농구계

  • 입력 2009년 8월 29일 02시 59분


한국농구연맹(KBL) 전육 총재는 다음 달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취임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일을 이야기하면 귀신이 웃는다’는 일본 속담을 인용했다. 업무와 실상을 파악한 뒤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겠다는 뜻이었다. 1년이 흐른 요즘 전 총재는 무엇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농구의 현주소만큼은 제대로 인식했을 것 같다.

남자 대표팀은 16일 끝난 중국 톈진 아시아선수권에서 역대 최악인 7위에 그쳤다. 전 총재는 대회를 마친 뒤 회식 자리에서 장문의 글까지 준비해 선수들과 관계자들을 질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톈진 비극’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그 충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 오히려 각 프로 구단과 선수들은 10월 개막되는 시즌 준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KBL과 대한농구협회는 다음 달 4일 공청회와 8일 대책회의를 열어 대표팀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하지만 자성 속에서 농구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주도권 장악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강하다.

뜻있는 농구인들은 “이번 부진이 재도약을 향한 쓴 약이 될 수 있다. 비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1995년 아시아남자선수권 이후 국내에서 국제대회를 연 적이 없다. 1980년대에는 흔했던 대표팀의 해외전지훈련도 자취를 감췄다. 10년 넘게 우물 안에 머물다 보니 국제대회에서의 입지는 줄었다. 스포츠 외교도 한계를 드러내 심판 및 경기시간 배정 등도 불리했다. 미국프로농구 출신 외국인 선수들도 부러워하는 호화 숙소에서 고액 연봉을 챙기는 스타들에게 태극마크의 자부심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선수들의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 한때 한국이 10전 전승의 우위를 지키며 경쟁 상대 취급도 안 했던 이란은 주니어 선수들을 10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키운 끝에 아시아 최강으로 떠올랐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지 않는다면 귀신이 웃는 게 아니라 팬들의 조롱과 냉소가 쏟아질 수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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