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지방 케이블 첫 전파
美 4대 중계권 따내며 급성장
홀로그램등 과감한 미래 투자
150국 시청 ‘스포츠 왕국’으로
‘스포츠를 보고, 듣고, 읽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라도 스포츠팬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ESPN의 미션)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 브리스틀.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차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진 미국 동부의 전형적인 전원도시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도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이곳에는 멀리서부터 빌딩 위의 위성 안테나 접시들이 보이는 다른 세상 같은 곳이 있다. 바로 ‘해가 지지 않는 스포츠 왕국’이라는 케이블 전문 스포츠 방송 ESPN의 본사다.
○ 창립 30년 만에 ‘스포츠의 세계적 리더’로 성장
다음 달 창립 30주년을 맞는 ESPN은 주요 미국 언론사 기자 10여 명을 초청해 지난달 27, 28일 이틀간 본사 투어, 제작과정 공개, 주요 사업 소개 등 미디어 워크숍을 실시했다. 카티나 아널드 홍보담당 부사장은 기자에게 “외국인 기자로는 당신이 유일하게 초청장을 받았으며 한국인 기자에게 ESPN 본사 취재를 허용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40만 m²(약 12만 평) 넓이의 본사 중심부에 ‘ESPN’이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진 잔디 광장에서는 이날 오후 특별한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현재 본사에 남아 있는 창립 멤버 43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였다.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직원은 이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환호했다. 또 이날 잔디광장을 둘러싼 보도에는 이들의 이름을 스타 모양과 함께 새긴 43개의 동판이 새로 깔렸다.
ESPN은 1979년 9월 7일 작은 케이블 방송국으로 처음 전파를 내보냈다. 처음에는 코네티컷 주에서 벌어지는 야구 농구 등의 운동 경기를 중계하는 지방의 소규모 방송국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미국 내 케이블 방송 시청가구가 급증하면서 ESPN의 사업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1982년부터 전국에서 벌어지는 미국프로농구(NBA) 경기가 ESPN의 전파를 타는 것을 시작으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1983년),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1987년), 미국프로야구(MLB·1990년) 등 미국의 4대 프로 스포츠 중계권을 따냈다. 지금은 나스카 자동차 경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축구,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등 골프, 윔블던 US오픈 호주오픈과 같은 테니스 등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기의 중계권을 ESPN이 독점하고 있다. 현재 ESPN은 세계 150개국에서 15개 언어로 65개 종목의 스포츠를 24시간 방송한다. 미국에서 케이블을 통해 ESPN을 시청하는 가구 수가 9800만 가구에 이르며 해외 시청 가구 수는 2억 가구를 넘는다. 사람들이 ESPN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보고 호주 사람들이 ESPN에서 호주오픈 테니스를 시청한다.
○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도전정신
ESPN은 매일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시청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가장 많은 광고비를 지출하는 방송이기도 하다. 월트디즈니가 80%의 지분을 갖고 있는 ESPN은 비상장회사이므로 매출과 수익 등 재무제표를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 내 방송사 가운데 광고비 수익이 가장 높고 케이블 회사로부터 분배받는 시청료 수입도 미국의 케이블 방송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SPN은 이날 미디어 워크숍에 참석한 기자들 앞에서 내년 봄부터 시범을 보이게 될 홀로그램 스포츠 중계기술을 시연했다. 기자들이 앉아 있는 방 안에는 ESPN의 뉴스 프로그램인 스포츠센터를 진행하는 간판급 앵커 크리스 버먼이 혼자 앉아 있는데 방안에 설치된 TV에는 또 다른 앵커 밥 레이가 함께 앉아 있다. 본사 내 다른 건물에 있던 레이 앵커를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 버먼 앵커와 같은 스튜디오에 앉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처럼 방송을 한 것이다. 척 파가노 기술개발담당 부사장은 “이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하면 시청자들은 미국에 있는 진행자가 영국에 있는 축구 선수를 바로 앞에서 인터뷰하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SPN은 스포츠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새로운 스포츠 중계 방식을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ESPN이 2003년 3월 처음으로 고화질(HD) 방식으로 스포츠 중계를 시작하자 지지부진하던 HDTV의 판매가 급증하기도 했다. 2001년 8월 출범한 인터넷 스포츠 중계 사이트인 ESPN360닷컴은 유료 가입 가구 수가 지난해 2300만 가구에서 올해 4100만 가구로 급증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휴대전화 등에 경기 결과와 하이라이트를 전송해주는 ESPN모바일 서비스도 지난해 유료 이용 건수가 78% 급증했다.
1979년 ESPN에 입사한 미치 리머노스키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ESPN은 임직원들이 회사에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며 “한 가지 성공이 있기까지 아마 10가지의 실패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스틀=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스포츠팬 열정이 ESPN 성공 요인
“ESPN이 스포츠 방송의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스포츠팬들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런 열정이 유지되는 한 ESPN의 성공 스토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ESPN의 조지 보든하이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1981년 ESPN 본사의 메일룸(우편물 배달과 발송을 담당하는 부서) 직원으로 채용된 보든하이머 CEO는 1998년 11월 사장에 올랐다. 그는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비즈니스저널이 지난해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50인 가운데 1위에 오르는 등 스포츠 산업에서 가장 파워가 큰 인물로 꼽힌다.
보든하이머 CEO는 “메일룸에서 일할 때 ESPN이 미식축구와 룰이 다른 호주 풋볼을 중계했는데 ‘호주 풋볼의 룰을 설명하는 책자를 받고 싶은 시청자들은 엽서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5만 통의 엽서가 왔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 같은 스포츠팬의 열정이 ESPN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9년 ESPN 창립 당시 케이블TV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많은 사람이 케이블TV에서 중계하는 스포츠 경기를 누가 돈을 내고 보겠느냐며 ESPN의 비즈니스 모델을 비웃었다”며 “이들은 스포츠팬의 열정을 간과했다”고 덧붙였다.
보든하이머 CEO는 “아직도 ESPN의 비즈니스 모델을 ‘틈새시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렇게 큰 시장을 틈새시장이라고 한다면 어떤 시장이 주요 시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ESPN은 미국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5년 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포커스를 맞춰 왔으며 이미 해외의 ESPN 시청 가구 수가 미국의 시청 가구 수를 훨씬 앞서고 있다”며 “스포츠는 세계 공통언어인 만큼 ESPN의 성장 신화는 해외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리스틀=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5년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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