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 개인 결승. 이창환(27·두산중공업)은 임동현(23·청주시청)을 113-108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현정(27·현대모비스) 역시 ‘여고생 신궁’ 곽예지(17·대전체고)를 113-112로 눌렀다. 한국양궁은 리커브 남녀 개인·단체 등 4개 종목을 석권하며 금4, 은3으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한국의 리커브 전 종목 우승은 1997년과 2005년 세계선수권에 이어 세 번째.
○ 승부 부담이 전화위복…이창환 세계정상
“(이)창환 오빠 울리러 가야지.” 이창환의 우승이 확정되자, 대표팀 동료 윤옥희(24·예천군청)가 달려갔다. 큰 눈망울을 가진 이창환은 유달리 눈물이 많다. 소속팀 동료 김보람(36·두산중공업)은 “누구보다 여린 마음씨를 지녔다”고 했다. 이창환은 베이징올림픽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유독 개인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쟤는 단체용 선수”라는 비아냥거림.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지만, 승부에 대한 부담은 역효과를 냈다. 동료들이 개인전 4강·결승에 진출하는 동안, 그는 표적지에 점수 확인을 대신 해주는 처지. 이창환은 “그 때는 남몰래 설움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울먹였다. 설상가상 손목부상까지 겹쳐 훈련도 제대로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는 원인모를 두통과 이명까지 엄습했다.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왔다. 급박한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진공상태를 경험했다. 스포츠심리학에서 화이트모멘트라고 부르는 극도의 몰입. 이창환은 “쉽게 설명하자면 ‘멍한 상태’로 활을 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침내 그 느낌이 서서히 몸에 녹아들었고, 돌부처가 탄생했다. 이창환은 “지금 와서 보면 왜 이걸 몰랐나 싶지만, 기나 긴 시간을 잘 버틴 결과인 것 같다”며 웃었다.
○주현정, 남편 외조 덕에 세계정상
베이징올림픽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주현정은 “올림픽을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1년. 주현정은 “그 말의 의미는 개인전에서도 세계 정상에 서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꿈을 이룬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남편이 있었다. 주현정은 지난해 11월, 남자30m세계기록보유자 계동현(26·현대제철)과 결혼했다. 10개월의 신혼생활. 하지만 함께 한 시간은 채 한달이 안 된다. 매주 주말, 계동현은 태릉으로 향했다. 선수촌에서 외출을 받은 주현정은 남편과 데이트를 하며 한 주간의 피로를 씻었다. 계동현은 “같은 양궁인이라는 점 덕분에 많은 부분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대 후반의 가장 큰 고민은 일과 사랑. 하지만 주현정은 베이징올림픽금메달과 결혼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소속팀 양창훈(현대모비스)코치는 “(주)현정이가 결혼 이후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안정감 있게 활을 쏜다”고 했다. 이제 목표는 2012런던올림픽 2관왕. 주현정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며 꽃다발 한 아름을 안겼다.
울산|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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