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결번, 역사가 된 숫자들

  • 입력 2009년 9월 11일 2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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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등 번호만 보고도 누구인지 팬들이 알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선수다. '또 하나의 이름'인 등 번호를 다른 선수가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팀이 선수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서 선수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한화가 정민철의 등 번호 23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했다. 자신의 등 번호를 역사로 남긴 야구 선수는 누가 있을까.

● 국내 7명…송진우 이승엽 '대기 중'

국내 첫 영구 결번의 주인공은 1986년 OB(두산의 전신) 김영신(54번)이다. 1985년 OB에 입단한 그는 동국대 시절 국가대표를 지낸 강타자 포수였지만 김경문, 조범현의 그늘에 가려 기회를 얻지 못하다 1986년 한강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OB는 김영신을 애도하는 차원에서 영결식을 치르고 1호 영구 결번 명단에 올렸다. 그 후 10년이 흘러 1996년 '국보 투수' 선동렬(해태·18번)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김용수(41번), 박철순(21번), 이만수(22번), 장종훈(35번)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뒤를 이었다(그래픽 참조).

1992년 데뷔 후 55번을 달았던 정민철은 2004년 승리 없이 6패로 부진하자 이듬해 23번으로 번호를 바꿨다. 그리고 그가 달았던 55번을 대전고 후배 투수 윤규진에게 물려줬다. 한화는 정민철에게 두 번호 가운데 하나를 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정민철은 "열심히 뛰고 있는 후배 번호를 뺏을 수 없다"며 23번을 택했다. 이 숫자는 미국 프로농구의 전설 마이클 조든(시카고 불스)의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 KIA는 2002년 '제2의 선동렬'로 불린 김진우가 입단했을 때 선동렬의 18번을 '부활'시키려다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취소하기도 했다.

한화는 조만간 송진우(21번)의 영구 결번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은 오래 전에 이승엽(36번)이 은퇴할 경우 영구 결번하겠다고 밝혔다.

● 메이저리그는 1939년 루 게릭이 최초

프로야구의 등 번호는 1929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등에 번호를 붙인 게 효시로 알려져 있다. 1937년부터 모든 선수가 의무적으로 등 번호를 달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39년 은퇴한 양키스 루 게릭(4번)을 위해 영구 결번이 도입된 이후 최근 그레그 매덕스(31번)까지 149명의 선수가 자신의 등 번호를 영원히 남겼다. 양키스는 1(빌리 마틴), 3(베이브 루스), 4(루 게릭), 5(조 디마지오), 7(미키 맨틀), 8(요기 베라, 빌 딕키), 9번(로저 매리스)이 영구 결번돼 한 자리 등 번호는 2, 6번만 남아 있다.

5개 팀을 오가며 통산 355승을 올린 매덕스는 애틀랜타 시절 194승을 올렸지만 영구 결번은 133승을 기록한 자신의 프로 데뷔 팀인 컵스가 선물했다. 국내 영구 결번 선수가 모두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과 비교된다.

특정 구단뿐 아니라 리그 전체가 쓰지 못하는 번호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빅리그 입단 50주년인 1997년 그의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번호인 42를 리그 전체 영구 결번으로 결정했다. 당시 이 번호를 달고 있던 양키스 특급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에게는 예외를 허용했다. 리베라가 은퇴하면 이 번호는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일본은 천재 투수로 활약하다 1944년 전쟁에 징용돼 전사한 사와무라 에이지(14번)를 시작으로 가네다 마사이치(34번), 오 사다하루(1번), 나가시마 시게오(3번) 등 선수 14명이 영구 결번됐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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