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안 들려도 달린다, 희망을 전하려

  • 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 채경완, 농아인올림픽 200m 동메달

《한국은 육상 불모지다. 단거리 종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988년 서울 대회 때를 빼고는 그 누구도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올랐다. 하지만 농아인올림픽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육상의 꽃’인 남자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채경완(31·인천시청)이 그 주인공이다. 2001년 제19회 로마 대회 200m에서 금메달을 땄던 그는 2005년 멜버른 대회에서 100m, 200m를 휩쓸며 ‘스프린트 더블’을 달성했다. 당시 그가 200m에서 우승하며 세운 21초26의 기록은 그해 국내 엘리트 선수의 기록으로 따져도 3위, 역대 17위에 해당하는 놀라운 성적이었다. 168cm의 작은 키로 장신 선수들을 제치고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

2001, 2005 올림픽 연속 우승
세계 장애인 육상계 ‘작은 거인’
허벅지 부상으로 금메달 놓쳐
“비장애인 한국 100m기록 깰것”

3세 때 심한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은 그에게 달리기는 희망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질주할 때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재능은 있었지만 그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사람은 없었다. 1995년 17세의 나이로 뒤늦게 육상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수화가 가능한 임낙철 교사(42·인천은광특수학교)를 만나면서 육상에 눈을 떴다.

성인이 된 채경완은 2003년 일반 실업팀인 인천시청에 입단했다. 임 교사는 인천시청 육상팀 우진규 감독(52)에게 제자를 부탁했다. 농아인 육상 선수 가운데서는 채경완의 훈련 파트너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 감독은 “처음에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장애인대회에 출전하면 적수가 없었지만 비장애인들과 겨루려니 긴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탁월한 성실함을 앞세워 완전히 적응했다”고 말했다.

채경완은 2006년부터 비장애인대회에도 출전했다. 출발 총성을 듣지 못해 남들이 뛰어나가면 그 뒤를 따라가기 일쑤였지만 몇 차례 입상권에 들기도 했다. 2007년 김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최우수선수로 뽑힌 뒤에는 “언젠가 비장애인 한국 기록(10초34)을 깨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8일 육상 남자 100m에서 지나친 부담에 따른 컨디션 조절 실패로 6위에 그친 채경완은 12일 200m 결승에서 22초17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레이스 후반 허벅지 부상으로 흔들리지만 않았더라도 메달 색깔은 바뀔 수 있었다. 채경완은 “결과가 아쉽지만 농아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계속 달릴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일반 올림픽과 똑같은 연금 혜택을 받게 돼 선수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은 편이다.

그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육상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종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망설였다. 하지만 참고 참으며 훈련에 최선을 다한 결과 모든 선수의 꿈인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 모든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한 나는 언제든 커다란 벽을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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