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는 14일 텍사스와의 연속경기 2차전에서 2회 내야 안타를 쳐 사상 최초로 9년 연속 200안타의 금자탑을 쌓았다. 종전 기록은 윌리 킬러(1894~1901년)와 함께 보유했던 8년 연속 200안타.
이치로는 지난해까지 8년 연속 3할 타율에 200안타, 100득점, 3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262안타를 때려 조지 시슬러가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80년 만에 경신했다. 입단 첫 해인 2001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슬러거상, 골드글러브를 휩쓸었다. 이만하면 메이저리그에서도 기록 제조기로 손색이 없다.
●"내야 안타에는 섹시함이 있다"
이치로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내야 안타다. 다른 타자라면 평범한 땅볼이 될 타구가 이치로에게는 내야 안타가 된다. 비결은 이치로의 타격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타격 시 뒷발에 무게 중심을 두는 여느 타자와 달리 이치로는 1루를 달려 나가는 듯한 자세로 공을 친다. 빠른 발과 왼손 타자라는 이점까지 더해져 '이치로만의 안타'가 나오는 것이다.
14일까지 이치로가 기록한 2005개의 안타 중 내야 안타는 453개(22.6%)나 된다. 이치로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들은 큰 타구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내야 안타에는 섹시함이 있다. 내야 안타를 치기 위해서는 테크닉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홈런만 좋아하는 여자들에겐 나도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가끔 힘을 보여주기 위해 나도 홈런을 치기는 한다"고 덧붙였다.
●홈런 대신 안타를 친다
김성근 SK 감독은 "이치로가 만약 홈런을 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한 시즌 20개는 거뜬하다. 하지만 그는 홈런을 버리고 안타를 친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영리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뛸 때 20홈런 이상을 두 번(1995, 1999년)이나 쳤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홈런 대신 안타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에서 오른쪽 다리를 들고 치는 진자 타법을 썼던 그는 메이저리그에 와서는 빠른 볼에 적응하기 위해 다리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타법으로 바꿨다.
김 감독은 "이치로는 홈런을 쳐도 자신이 납득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타격 폼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꾸준한 연습으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상식을 거부하는 타격
"보통 타자는 직구 타이밍에서 변화구는 칠 수 있다. 하지만 이치로는 변화구 타이밍에도 직구를 칠 수 있는 선수다." SK의 일본인 투수 가도쿠라 겐의 말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치로와 2번 상대해 1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는 그는 "다른 타자에겐 1, 2, 3구를 계획에 따라 던졌지만 이치로에겐 모든 공을 승부구로 던져야 했다. 어떤 코스나 구질에도 방망이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치로의 순간 대처 능력은 상식을 거부하는 수준이다. 변화구를 노리다 직구가 들어오면 꼼짝 못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치로는 그 상황에서도 방망이를 컨트롤해 안타를 만들어낸다. 이치로는 이 감각을 키우기 위해 피칭머신을 코앞에 두고 타격 연습을 해 왔다. 김성근 감독은 "2006년에 이치로의 연습 타격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처럼 빠르고 정확한 방망이 대처는 이치로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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