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감독은 “올 시즌 히트 상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타고난 몸에 빼어난 기술은 물론이고 누구보다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어서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일본 오사카에서 전지훈련 중인 전주 KCC 가드 전태풍(29·178cm·미국명 토니 앳킨스).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KCC 유니폼을 입은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코리안’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LA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에게 영어보다 한국말을 먼저 배웠다. 어려운 단어만 모를 뿐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충분하다. 스테이크보다 갈비탕과 감자탕을 더 좋아하고, 젓가락질에도 능숙한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열정을 찾을 수 없었던 유럽리그
미국 17세 이하 청소년대표를 지낼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조지아공대를 거쳐 프랑스와 터키리그에서 뛰었고, 폴란드와 크로아티아리그에서는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유럽에서 뛰면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문화도 달랐고, 내 집이 아닌 것 같아 늘 뭔가 아쉬웠다. 그 좋아하던 농구가 ‘돈벌이’로만 생각되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도 그래서였다.
○사촌동생이 지어준 이름
지금도 여러 친척들이 인천에 살고 있고, KCC에 입단하기 전에 한국을 여러 번 찾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무대 진입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올 2월, 인천에 사는 사촌동생은 멋진 한국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태풍’이라고 지어줬다. 어머니 성을 딴 그의 이름은 그래서 ‘전태풍’이 됐다. 처음 태풍의 뜻을 잘 몰랐던 그는 영어로 ‘typhoon’을 의미한다고 하자 선뜻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한국 농구에 태풍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승진이가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줬다. ‘전, 태풍이에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만다.
○여자 친구도 만나게 해준 한국
두 살 아래인 그의 여자 친구 미나 씨는 현재 수서의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자신과 똑같은 ‘하프 코리안’인 그녀를 다시 만난 건 KCC에 입단한 뒤. 어릴 적 LA에서 교회를 다닐 때, 그녀는 말 그대로 그냥 ‘엄마 친구의 딸’이었다. 어머니에겐 자신과 똑같은 입장의 한국인 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도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 이번에 어머니가 ‘우리 아들 한국에 간다’고 하자 그 친구는 ‘우리 딸도 한국에 있다’고 했고, 그래서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났다. 코흘리개 시절 만난 ‘소녀’가 ‘애인’이 될 수 있었던 건 하늘이 준 인연이었고, 그래서 그에게 한국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국가대표도, 챔프도 되고 싶다
그는 오사카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면 곧바로 미국 국적 포기 절차에 들어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예정.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국국가대표팀에 몸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허 감독이 “대표팀에 안 뽑아주면 미국으로 돌아갈 놈”이라고 말할 정도로 태극마크를 향한 그의 꿈은 절대적이다.
또 하나. 그는 자신이 미국에서 배운 농구를 밑바탕 삼아 한국농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슛만 놓고 보면 한국농구가 세계 제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나 개인기는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전체적인 조직력은 좋지만 돌파나 드리블 등에서 떨어지는 개인 능력을 높여 훗날 한국농구가 한 단계 성장하는데 보탬이 되고픈 욕심을 갖고 있다.
‘감독이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하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창피하다”고 말하는 전태풍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아직 한번도 챔프가 된 적이 없다. 지난 시즌 KCC가 챔피언이었는데, 이번에도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오사카(일본)|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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