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시아의 맹주로서 월드컵의 단골손님이 된 한국이 아직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 보자면, 한국은 남반구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없다. 제18회 대회였던 독일월드컵 이전에 적도 아래에서 본선 대회가 열린 적은 단 네 번 밖에 없었고, 그 장소는 남미였다. 우루과이,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이 개최국이었으며, 이번 대회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유치하면서 32년 만에 트로피가 남반구로 돌아오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미에서 열린 4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남미팀들이 우승했다는 것이다. 제1회 대회를 주최한 우루과이가 1930년에 이어 1950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줄리메컵’을 들어올렸고, 브라질은 1962년 칠레월드컵, 아르헨티나는 1978년 자국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쯤 되면 ‘남반구 어드밴티지’란 말이 나올 만하다. 실제로 북반구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남미 팀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남반구의 우세가 계속될까. 우선 ‘날씨’라는 변수를 살펴보자. 78년 월드컵 결승전은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후 3시에 시작됐지만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선수들은 모두 긴소매 상의를 입고 있었다. 네덜란드 미드필더 레네 판 데 케어코프는 (손이 시려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오른손에 석고붕대까지 하고 나오는 바람에 킥오프가 지연되기도 했다.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열린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낮 기온 섭씨 20도, 저녁 기온 10도 안팎으로 일교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은 준결승에서 섭씨 5도의 ‘강추위’(?) 속에 고전하다 미국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두 번째 변수는 선수단 구성이다. 78년 대회에서 6골을 기록하며 골든슈를 차지한 마리오 켐페스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유일한 해외파였다. 그 때만 해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드물기도 했지만 큰 대회를 앞두고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변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대표팀에서 자국 리그에 소속된 선수는 거의 없다. 바꿔 말하면, 유럽에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한 선수들이 잠시 쉴 틈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현지 캠프에 바로 합류해야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유일한 위안은 시차 적응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지구 반대편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후 7시간의 시차를 극복해야 하는 데다 여름에서 겨울로 기후적응까지 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첫 월드컵이니만큼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2002년에는 우리가 이변의 주인공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변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철저한 대비만이 희생양이 될 확률을 줄이는 길이다.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국제축구의 흐름을 꿰뚫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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