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홍성흔(32)은 25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오늘의 목표는 볼만 치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 전까지 타격 1위 박용택(LG)에 2리 차로 뒤져있던 참. 이날은 롯데의 시즌 최종전이라 역전을 노릴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감독님께서 ‘상대방이 절대 좋은 볼을 안 줄 테니 무조건 볼도 안타로 만들라’고 하셨다”면서 “일단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홍성흔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볼-스트라이크-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볼. 홍성흔이 7회까지 네 번 타석에 서는 동안 공 17개가 날아왔는데, 그 중 16개가 볼이었다. LG 투수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나는 볼을 던졌다.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는 코스. 이쯤 되면 스트라이크 한 개가 오히려 ‘실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 하나가 포수 미트에 꽂힐 때마다 3루 쪽 롯데 관중석은 야유로 뒤덮였고, 1루로 향하는 홍성흔의 얼굴에는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
LG 김재박 감독은 박용택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면서 “예전에는 이보다 더한 밀어주기도 있었는데 뭘”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랬다. 1984년 삼성은 이만수의 트리플 크라운(타격·홈런·타점 1위)을 완성시키기 위해 경쟁자인 홍문종(롯데)을 9연타석 고의4구로 걸렀다. 하지만 그 결과 이만수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면승부를 피한 타격왕’으로 회자되고 있다.
LG는 9회 2사 후에서야 비로소 홍성흔에게 ‘칠 만한’ 볼을 던졌다. 볼카운트 1-1에서 오랜만에 스트라이크가 하나 들어오자 1루쪽 LG 관중석에서도 비로소 박수가 나왔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홍성흔이 안타 1개를 추가해도 박용택을 추월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LG는 결국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박용택을 단 한 타석도 내보내지 않았다. 김 감독은 “박용택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쉽게 맞이하기 힘든 기회라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26일 잠실 히어로즈전을 남겨둔 박용택은 타율 0.374를 유지해 이변이 없는 한 생애 첫 타격 1위에 오르게 됐다. 또 “자기 일처럼 격려해주고 도와준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수들에게 고맙다. 홍성흔 형이 좋은 경쟁자가 돼줘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반면 로이스터 감독은 “창피한 작전이다. 매우 실망했다. 1안타만 쳐도 (박용택을) 못 이기는 상황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며 분노했다. 홍성흔은 “이전 3경기에서 너무 못 쳤던 내 탓이다. 박용택의 타격왕 등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다.
잠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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