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스포츠 클럽] 국민감독 빈자리 더 커보이는 이유

  • 입력 2009년 9월 28일 0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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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20. 김인식 감독이 1000승에 불과 20승을 남겨두고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국민감독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김인식 감독은 촌철살인의 한마디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금년 관중 신기록에 김경문 감독과 함께 큰 역할을 한 그의 현장 후퇴가 일시적이길 바라는 야구인, 팬들이 많다. 25일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한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큰절로 인사한 장면은 그가 선수들에게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란 걸 일깨워주었다.

부진한 투수진, 김태균 이범호 김태완의 부상으로 약화된 전력은 최하위라는 성적으로 이어졌고, WBC 4강·준우승의 국민감독도 어쩔 수 없이 프로세계의 냉혹함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시켰다.

프로야구 감독은 계약과 동시에 해고가 동반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겨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매 경기마다 피 말리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불편한 몸으로 두 차례나 한국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김인식 감독의 후퇴를 보면서 1회 WBC 때 미국의 추운 날씨로 인해 거동의 불편함을 보여준 장면, 2회 대회 때 “국가가 먼저”라며 위대한 도전으로 일궈낸 과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넉넉함과 여유가 있고 길게 내다보는 감독이었다. 일본이 이용규에게 빈볼(?)을 던졌을 때 선수단 대부분이 흥분했었고, 곧바로 우리도 이치로에게 한방 맞혀야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 그는 절대 고의로 맞히지 말라며 만류했다. 그 순간이야 잘하고 있던 이용규에게 한방을 먹인 게 괘씸하고 보복하는 게 속 시원했을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 순간 참고 상대를 용서해준 결정이 옳았음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함께 맞히면서 벤치 클리어링을 하는 것보다 의연하게 대처한 자가 진짜 승자였고, 이용규를 맞힌 일본 투수 우쓰미도 나중에 한국측에 사과했다. 더구나 국제대회에서….

김인식 감독은 살벌한 프로세계에 상존하는 견제, 질투, 모함, 상대편 비하나 흔들기와는 거리가 먼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기에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내년엔 그가 프로야구 현장의 덕아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가 떠난 빈자리는 단순한 빈자리 하나가 아니라 선배, 노장 감독으로서 감독들 간의 갈등, 오해가 발생했을 때 조정자 역할을 할 인물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계에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야구 발전보다 권력의 향유를 탐내는 인물들이 문제야’라며 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제 한화 구단의 고문직을 맡을 예정이지만 그가 언젠가 그라운드로 돌아와 나머지 20승을 채우는 것은 물론 더 깊고 커질 것 같은 갈등의 골을 조정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야구해설가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감독, 코치, 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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