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33년 전이다.
SK 김성근 감독(67)은 1976년 충암고 사령탑을 맡았다. 첫해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지방을 돌아다니다 대구 대건고 야구부가 해체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선수 18명 모두를 서울로 데려왔다.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지금의 KIA 조범현 감독(49)이었다.
이듬해 충암고는 창단 9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봉황기)에서 우승했다. 조범현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두 사람은 1982년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OB에서 코치와 선수로 다시 만났다. 코치는 2년 뒤 감독이 됐다. 1996년 김 감독이 쌍방울을 맡았을 때 제자는 같은 팀 코치였다.
제자도 2003년 감독이 됐다. 처음 맡은 팀은 SK였다. 당시 야인이었던 김 감독은 제자가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제자는 현대에 3승 4패로 아쉽게 진 뒤 “스승께 보답하고 싶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SK는 2007년 조 감독을 내쳤다. 공교롭게도 후임은 김 감독이었다. 조 감독은 코치로 KIA에서 일하다 시즌이 끝난 뒤 감독으로 승진했다. 사제 대결의 시작이었다.
15일 광주 무등경기장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행사. 두 사람은 적장으로 만났다. 조 감독은 허리를 굽혔고 김 감독은 꼿꼿하게 선 채로 악수를 했다. 그 모습만 보면 여전히 스승과 제자였다.
조 감독은 덕담을 해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감히 제자가 스승에 대해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고교 2학년 가을에 처음 봤는데 설마 이런 자리에서 같이 있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도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에 몰두하면 악착같이 했는데 뭔가 해내리라 싶었다”고 말했다.
스승은 제자를 대견한 듯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봐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제자의 말에 “스승이 쉽게 지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라고 받아쳤다. 제자는 스승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많이 공부할 것 같다”며 스승을 한껏 띄웠다. 하지만 속으로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떠올렸을지 모를 일이다. 30년을 뛰어넘은 사제 대결. 1차전은 16일 오후 6시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이승건 기자 why@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