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필리스 찰리 매뉴얼 감독은 17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LA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NLCS) 2차전 승부처에 박찬호를 셋업맨으로 기용했다. 하루전 다저스 중심타선을 완벽하게 처리해 이날 1-0으로 앞선 8회말 다시 마운드에 세운 것.
박찬호는 선두타자에 안타를 허용하고 다음타자의 보내기번트마저 내야안타가 된 뒤 다저스 포수 러셀 마틴을 3루쪽 병살타로 처리해 실점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2루수 체이스 어틀리의 악송구 실책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어틀리는 1차전에서도 1루 악송구 실책을 범했지만 수비 범위가 매우 넓은 뛰어난 2루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결정적 승부처에서 실책을 범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아직 NLCS 시리즈의 승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만약 시리즈가 다저스의 승리로 끝난다면 어틀리의 실책이 승부를 결정지은 플레이가 된다. 필리스로서는 원정 1, 2차전을 이길 경우 월드시리즈 진출에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것은 분명했다.
사실 포스트시즌에서는 선발투수의 호투와 홈런이 승부의 향방을 가늠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처럼 실책이 시리즈를 좌우하는 경우도 나온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저스의 디비전시리즈도 2차전에서도 9회말 2사 후 카디널스 좌익수 맷 할러데이의 실책으로 시리즈 승패가 갈렸다. 할러데이의 경우는 다소 예외이지만 실책을 범하는 선수들이 평소에는 매우 건실한 수비로 유명하다는 게 특징이다.
○시리즈를 가른 실책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뉴욕 양키스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게 트로피를 넘겨준 것도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견제 악송구가 결정적이었다. 리베라는 수비가 좋은 투수에 속한다. 양키스가 9회말 2-1로 앞선 상황. 리베라는 선두타자 마크 그레이스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했다. 이어 대미언 밀러의 번트 타구를 잡아 2루로 악송구하면서 무사 1, 2루가 됐고 양키스는 결국 토니 워맥에게 동점타, 루이스 곤살레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내줘 2-3으로 패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리베라가 실책 없이 아웃카운트를 잡았다면 곤살레스 타석 때 전진수비를 할 필요도 없었다. 곤살레스의 빗맞은 타구는 정상수비였으면 유격수 낮은 플라이였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둔 게 1948년이다. 훗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두명의 명투수 봅 펠러와 봅 레먼을 확보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1997년 49년 만에 정상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신생팀 플로리다 말린스와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했다.
클리블랜드는 7차전 9회말 2-1로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 호세 메사가 블론세이브로 승리를 날려 버린 뒤 연장 11회말 1사 1루서 2루수 토니 페르난데스가 평범한 땅볼에 알까기 실책을 저질러 승패가 갈렸다. 페르난데스는 올스타게임 5회, 골드글러브 4회를 수상한 명 내야수였다.
승부를 가른 실책은 야구뿐 아니라 농구에서도 있었다. 1993년 대학농구 NCAA 토너먼트 미시건-노스캐롤라이나 결승전에서 벌어졌다. 경기 종료 11초를 남겨두고 공격권을 쥐고 있던 미시건은 71-73으로 뒤져 있었다. 그런데 프런트코트 오른쪽에서 볼을 쥐고 있던 미시건 포워드 크리스 웨버가 갑자기 타임아웃을 부른 것. 미시건은 이미 타임아웃을 다 사용한 터라 자동 테크니컬파울이었다. 동점 또는 역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웨버의 어처구니없는 범실로 미시건은 노스캐롤라이나에게 71-77로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