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들었습니다. 집안이 온통 흐트러져 있습니다. 황망해 하던 황병일(49·KIA·사진) 코치의 심장이 문득 서늘해집니다. ‘우승반지! 그게 어디 있더라?’ 서둘러 기억을 더듬습니다. 안방에 있던 아내의 패물함 생각이 납니다. 달려갑니다. 하지만 당연히, 텅 비어 있습니다. 현기증이 납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요.
두 개가 있었습니다. 1985년 삼성이 전·후기 통합 우승할 때 선수로 받은 것 하나, 1999년 한화가 우승할 때 코치로 받은 것 하나. 야구로 평생을 먹고 살아온 사람에게, 우승반지란 인생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서늘한 가을밤에 모두가 죽기 살기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유도, 그 작은 반지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황 코치에게도 두 개의 반지는 ‘보물’이었고요.
허겁지겁 경찰을 불렀습니다. 담당 형사의 팔을 붙잡고 하소연하다가 눈시울까지 붉혔습니다. “다른 물건들은 못 찾아도 좋으니, 우승반지 만은 꼭 찾고 싶습니다. 안쪽에 내 이름이 적혀 있을 테니, 어쩌면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끝내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체념하고 살아온 6년입니다. 황 코치가 올해 우승 반지를 끼게 된다면, 세 번째가 아닌 첫 번째 반지가 되는 겁니다.
더 뜻 깊을지 모릅니다. 황 코치의 ‘아들’들이 앞장서 정규 시즌 우승을 이끌었으니까요. 메이저리그에서 온 거포 최희섭부터 갓 입단한 막내 안치홍까지, 줄줄이 황 코치를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LG에서 만년 유망주였던 김상현도, 1년에 홈런 한 개 치는 것조차 버거워했던 김원섭도, 황 코치의 도움 속에 확 달라졌습니다.
KIA가, 광주가,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의 KIA 팬들이 모두 행복했던 한 해. 그래도 황 코치는 “선수들이 잘 해줘서 내 이름 석 자까지 유명해졌을 뿐”이라고만 합니다. “다른 것 없어요. 운동선수들에게는 ‘땀’이 최고의 비결이거든요. 코치는 선수가 흘리는 땀을 옆에서 지켜봐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면 되는 거니까요.”
함께 고생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영광스러운 끝이 찾아옵니다. “우승하게 되면, 지난 1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 같아요.” 짓궂게 물었습니다. ‘또다시 우승반지를 받게 된다면?’ 그러자 황 코치가 껄껄 웃습니다.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게, 소중하게 보관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