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연맹이 발간한 올 시즌 프로농구 미디어 가이드북에 소개된 SK 농구단 약사(略史)에는 2003∼2007년 성적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다. SK의 요청에 따라 2002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이어 2007년 5월 김진 감독 취임으로 건너뛰었다. SK에 이 시기는 지워버릴 만큼 참담했다. SK는 5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뒤 2008년 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다시 8위로 추락했다.
호화 멤버에도 하위권을 전전한 SK는 거듭된 주전 부상과 함께 모래알 같은 조직력이 문제였다. ‘버스 정거장처럼 뜨내기손님만 북적거린다’는 지적에 선수들의 소속감이나 뜨거운 동료의식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 SK가 올 시즌 끈끈해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KT&G에서 이적한 가드 주희정(32)이 변화의 원동력으로 꼽힌다. KT&G 시절 양희종 이현호 김일두 등 투지 넘치고 희생적인 후배들과 호흡을 맞춘 주희정이 개인플레이가 심한 SK에서 적응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대 시절 ‘열쇠 당번’이라 불릴 만큼 밤늦게까지 코트에서 땀을 흘리던 그는 성실한 태도와 후배를 꼼꼼히 챙기는 섬세한 리더십으로 팀 분위기를 변모시켰다.
요령 한 번 피우는 일 없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맨 먼저 훈련장에 나가 가장 늦게 떠나는 새 주장 주희정의 솔선수범에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개성이 강한 방성윤과 김민수도 주희정의 말 한 마디에 꼼짝 못하게 됐다. SK 최고참 문경은은 “희정이의 꼬투리를 잡아볼까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며 웃었다. 시즌 개막 후 SK가 3연승의 상승세를 탄 데는 주희정이 노련한 경험으로 경기 흐름을 주도한 덕분이었다. 김진 감독은 “희정이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타성에 젖었던 선수들을 깨웠다”고 칭찬했다.
정작 주희정은 “나 혼자 뭘 얼마나 바꿨겠는가. 다들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희정은 과연 SK의 잃어버린 과거를 보상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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