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가 ‘우승 불모지’의 터부를 깨고 1위를 차지한 가운데 2009 K리그 정규시즌이 막을 내렸다. 이동국의 화려한 부활과 전북 최강희 감독, 포항 파리아스 감독의 지도력은 시즌 내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 시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민구단 경남 FC의 선전이었다. 비록 전북과 마지막 경기서 패해 6강 플레이오프 좌절을 맛보긴 했지만 경남의 조용하지만 가파른 성장곡선은 마치 어린 아이가 쑥쑥 커가는 것처럼 손에 잡히는 듯 했다. 그 모습에서 2000년 5월 프랑스컵 결승에 진출했던 프랑스 4부리그팀 FC칼레(Calais)의 기적을 떠올렸다면 과장일까.
물론 프로팀인 경남을 항구 노동자들의 축구동호회 수준이었던 칼레FC에 비유한다는 것은 실례다. 하지만 20년째 ‘축구 밥’을 먹어온 사람으로서 올 시즌 경남FC에서 아는 선수라곤 지난해 말 잠깐 대표팀에 발탁됐던 김동찬 정도였으니 철저히 무명팀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한물간 선수라도 서넛은 있어야 프로팀의 모양새가 갖춰진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광래 감독(사진)의 선택은 의외였다. 아니 무모하게 보였다. 맘에 들지 않으면 스타도 모조리 빼버리는 그의 성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건 대학팀도 아니고 자칫 ‘오대영 감독’의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남은 전북과의 개막전부터 내리 5게임을 1-1로 비기더니 부산, 인천, 전남에 내리 0-2로 패하며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초반 8경기 무승을 비롯해 전반기 2승8무4패.
하지만 이후 경남은 무섭게 달라졌다. 8월22일 부산전 승리(3-1)를 신호로 인천, 전남, 강원, 광주를 연파하며 5연승을 질주했다. 그것도 3-1, 4-1, 4-0의 거침없는 스코어를 써 내려갔다. 이같은 저력은 최종전서 전북에 패할 때까지 계속됐다.
최강희 감독이 경기 전 “정말 부담스러운 경기”라고 실토할 만큼 경남은 이미 K리그 정상권 팀으로 발돋움해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이용래 김태욱 이훈 박민 김종수 등 베스트멤버의 절반 이상이 연습생 출신이고, 김주영 김영우 송호영 등을 포함하면 8할이 신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팀 전술에 따른 과감한 포지션 변경과 토털사커를 연상케 하는 스피디한 공수 전환, 상대를 압도하는 기동력은 대형선수가 부족한 시민구단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팀 컬러를 보여주었다.
경남FC의 선전이 크게 다가온 것은 K리그의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공개테스트를 통해 얼마든지 재원을 발굴할 수 있고,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수만 가지의 맛을 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경남은 축구로 시연해 보인 셈이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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