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K2와 함께하는 알파인 등반 체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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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난 원래 뉴질랜드 시골에서 벌을 치며 먹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하다.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1914∼1986)와 나는 한 팀으로 1953년 5월 29일 세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어떻게 올랐느냐고? 그건 간단하다.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갔다. 에베레스트는 체력이 강한 사람이 오르는 게 아니라, 오르고 싶은 사람만이 오른다.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왜 산에 오르는지 명확한 답을 하긴 어렵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에 오르기 위해 갈 뿐이다. 내 유골을 내 고향 뉴질랜드 오클랜드 앞바다에 뿌려 달라. 나에게 영광을 안겨준 산엔 그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다.’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

히말라야 암벽들은 보통 수천m가 넘는다. 하루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게는 며칠, 많게는 일주일 넘게 걸린다. 눈사태에 낙석까지 떨어진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수직암벽에서 먹고 자고 배설까지 해결해야 한다. 새처럼 깎아지른 암벽에 붙어 칼잠을 잔다. 뼈를 에는 칼바람 속에서 비스킷 몇 조각으로 허기를 달랜다.

비박은 그런 한뎃잠을 말한다. 독일어 Biwak, 프랑스 Bivouac에서 유래했다. 한마디로 산에서 텐트를 쓰지 않고 자는 한뎃잠은 모두 비박이다. 비박은 우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낙엽이 쌓인 곳 등 마른 곳이라면 더욱 좋다. 3000m 아래 낮은 산이라면 동굴이나 큰 나무, 바위 밑이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8000m급 히말라야 수직암벽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무나 동굴이 있을 턱이 없다. 어쩌다 큰 바위가 있을 뿐이다. 그런 바위 아래에서 비박을 하면 일단 위에서 쏟아지는 눈사태를 피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바람도 막아준다.

슬로베니아 토모 체센(1959∼)은 1990년 4월 32시간(2박3일)만에 무산소 단독으로 히말라야 로체남벽(등반고도 3300m)에 올랐다. 로체정상(8516m)은 세계에서 4번째 높은 봉우리. 그 남벽은 1973년부터 17년 동안 각국원정대가 13차례 도전하였으나 실패했던 ‘악마의 수직 벽’이었다.

1975년 리카르도 카신(1909∼)이 이끄는 이탈리아원정대도 두 번이나 무릎을 꿇었다. 카신은 “아마 20년 후에나 누군가 이 벽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도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하의 라인홀트 메스너(1944∼)조차 “그건 21세기에나 오를 수 있는 벽”이라며 오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세계 두 번째로 14좌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크츠카(1948∼1989)도 바로 그 남벽을 오르다가 떨어져 죽었다. 벽도 벽이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사태와 낙석이 문제였다.

서른하나의 새파랗게 젊은 체센은 어떻게 올랐을까. 그는 주로 밤에 등반했다. 눈사태와 낙석이 쏟아지는 낮엔 비박으로 휴식을 취했다. 믹스지대(바위 얼음 눈의 혼합지대)는 최대한 빠르게 속공으로 통과했다. 체센은 오를 때 두 번, 내려올 때 한번, 모두 3번 비박을 했다. 그에게 비박이란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서서 원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의 배낭무게는 모두 9kg. 장비는 침낭, 비박 색, 아이스바일 2자루, 크램폰, 헬멧, 안전벨트, 빙벽용 피톤 몇 개, 암벽용 피톤 몇 개, 여벌의 장갑과 양말, 고글, 카메라, 6mm 로프 100m, 여벌 옷, 식량(치즈, 초콜릿, 포도당, 치즈과자, 커피 3L)이 전부였다.

로체남벽 밑(5200m) 오후 5시 출발→15시간 등반→오전 8시 7500m 지점 바위 아래 비박(매트리스 깔고 우모침낭 덮은 채 취침)→오후 1시 기상→오후 11시 8200m 지점 두 번째 비박(웅크린 채 휴식)→오전 5시 배낭 식량 모든 것 놔둔 채 등반 시작→ 오후 2시 20분 정상 도달→하강 시작. 오후 9시 7300m 지점 비박(서서 휴식)→새벽 암벽 밑 도착.

김형일 아웃도어업체 K2익스트림팀 대장은 말한다. “히말라야에서의 비박은 거의 뜬눈으로 선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벽을 깎아내 2평 남짓의 텐트 칠 만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최소 30분, 많게는 3시간까지도 걸린다. 체력소모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도 텐트를 칠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발은 허공에 뜬 채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마땅한 비박 지점이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동영상 촬영: 서영수 전문기자
암벽 포터레지서 비박…“발 아래가 모두 내 세상”


10일 대둔산에서 열린 ‘K2와 함께하는 3차 알파인 등반체험’. 김형일 대장이 책바위 벼랑에 비박장비인 2인용 포터레지를 펼쳤다. 바위틈에 위태하게 박혀있는 붉은 턱받침 한 장. 언뜻 보면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 양탄자나 펄럭이는 붉은 새의 날개 같기도 하다. 그 위에서 두 사람이 비박을 한다. 잠 잘 땐 서로 몸을 엇갈려 눕는다. 상대 다리와 나의 머리가 같은 쪽에 있게 된다. 그래야 포터레지가 무게중심이 맞아 기우뚱거리지 않는다.

책바위 꼭대기엔 초보바위꾼들이 오종종 모여앉아 하강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인간이 암벽에 붙어 잠을 자다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김 대장이 포터레지에 앉거나 누우며 설명을 해주는데도 눈만 멀뚱멀뚱하다. 마음은 정작 다른 데 가있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얼떨떨한데 이젠 저 까마득한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심장이 벌렁벌렁, 가슴이 두근 반 서근 반이다. 바람이 “휘잉∼” 휘파람을 불고 간다. 까마귀도 여지없이 나타나 빙글빙글 맴을 돈다.

사법고시 준비생 최정훈 씨(29)는 “지난해 사법고시 1차 실패 후 청평으로 번지점프를 하러 갔었다. 그 덕분인지 올 1차에 합격했다. 하지만 2차에서 실패해 이번엔 바위를 타러왔다. 놀이동산에서 아무리 무서운 것도 끄떡없었는데 막상 바위를 타려니 다리가 덜덜 떨린다. 솔직히 어떻게 내려갈지 걱정이다. 무서워서 밑을 내려다보고 싶지 않다. 어쨌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내년엔 틀림없이 시험을 통과하고야 말겠다”고 말했다.

포터레지는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 가게들의 철구조 지붕천막에서 힌트를 얻은 것. 그 이전엔 주로 그물침대인 해먹을 사용했다. 하지만 온몸이 휴지처럼 구겨져서 잠을 자기 때문에, 깬 뒤에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김 대장은 “이곳에서 잠뿐만 아니라, 앉아서 차도 마시고 화장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이 세고 낙석과 눈사태가 심한 히말라야에선 사용할 수 없다. 무게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비박지점은 흔적 없이 깨끗해야 한다. 배설물이나 장비는 꼭 들고 내려와야 한다. 미국 요세미티 계곡의 화강암절벽 엘 캐피탄(1086m)에선 장비나 배설물을 아래로 던지는 것은 불법이다. 자칫하면 절벽 아래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는 결코 공중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초보바위꾼들의 책바위 하강이 시작된다. 높이 55m에 경사도 85도. 모두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어보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문득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8자 하강기에, 8자 매듭의 밧줄을 건다. 스르르 다리에 힘이 빠져 나간다. 대신 손엔 잔뜩 힘이 들어간다. 행여 밧줄을 놓칠세라 꽉 움켜쥔다.

“몸을 L자 형태로 만든 뒤, 두 발로 암벽을 가볍게 차면서,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내려가라.” 김 대장의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왜 이럴까? “오른손 밧줄을 조금씩 풀어주라!” 김 대장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스르륵 한발 한발 미끄러진다. 할 만하다. 재미있다. 오돌토돌한 바위 살갗이 눈에 들어온다. 마른 검버섯이끼가 게딱지처럼 붙어있다. 생돌 냄새가 풋풋하다. 사륵사륵 돌들의 손가락 뼈마디 푸는 소리가 들린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은 애기소나무가 까르르 웃는다.

회사원 박명숙 씨(52)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밥하는 아줌마가 어찌 이런 경험을 할 줄 알았겠는가. 다시 이러한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가서 자랑했더니 남편과 아들은 ‘우린 도저히 무서워서 못한다’고 하더라.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데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999년 5월 6일 네팔의 셰르파 바부치리는 동생 2명과 함께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 텐트를 치고 21시간30분 동안 머물렀다. 에베레스트 봉우리에서 산소 없이 이틀 가까이 머문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죽음의 지대’에서 돌아왔다. 네팔의 또 다른 셰르파 락파 겔루는 2003년 5월 26일 10시간56분46초 만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비록 산소를 사용했지만 초고속 등정이었다. 인간의 에베레스트 10시간 이내 등정도 머지않았다. 인간의 힘은 무한하다. 꿈을 꾸면 그 꿈은 이뤄진다. 의사나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인간한계란 계산수치에 불과하다. 꿈은 열정과 도전을 먹고 자란다.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송찬호 ‘고래의 꿈’에서>

회사원 김도훈 씨(33)는 “가끔 산에 가서 남들이 하는 걸 보기만 했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솔직히 군대에서도 무서워서 못했었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강사님들 믿고 차근차근 하다보니 되더라. 마치 내가 스파이더맨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짜릿하고 황홀했다. 또 다른 세계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신윤섭 씨(38)도 “책바위 하강 중간쯤에서 온몸의 힘이 쫘악 빠져버렸다. 떨어질까 봐 밧줄을 너무 꽉 잡은 탓이다. 그 순간 문득 ‘이젠 어쩌지’ 하는 생각에 겁이 와락 났다. 직장동료들에게 자랑했더니 처음엔 반신반의 하더니, 사진 보여주니까 깜짝 놀라면서 부러워하더라. 산악인들이 먹는다는 진공건조비빔밥 점심도 꿀맛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늦가을 대둔산은 고즈넉했다. 늙은 누님처럼 편안했다. 바람들이 바위 등짝에서 개구쟁이처럼 뛰놀았다. 휘잉∼휘잉∼보리피리를 불어댔다. 나뭇잎 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사람들은 줄을 타고 놀았다. 어찔어찔 말을 타듯 어디론가 나아갔다. 하지만 줄은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 사람들의 허리춤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 너머 세상 밖은 아득했다. 서산에 붉은 해가 일렁였다.

조성하 기자 mars@donga.com

등반다큐 감독…구조대원…‘산그늘 같은 사람들’

산엔 정작 산꾼들이 없다. 진짜 산 사나이들은 산 속에 숨어있다. 산꾼들은 산그늘을 밟으며 다닌다. 뒷전에서 산처럼 서서 빙그레 웃는다. K2알파인체험에도 그들이 있었다.

임일진 감독(40·사진)은 등반다큐멘터리 전문 영화감독이다. 한국외국어대 산악반 88학번. 지난해 8월 인도 히말라야 마힌드라(6020m)에 올랐다. 그 등반과정은 ‘호은(70분 예정)’이라는 제목으로 조만간 일반 영화관에서 개봉될 예정. 올 7월 김형일 대장이 이끄는 파키스탄 서부 스팬틱 골든피크(7027m) 등정에도 참가했다. 임 감독은 5300m지점까지 오르며 HD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아냈다.




임 감독은 늘 비켜서서 산사나이들의 행로를 뒤쫓는다. 중간 봉우리에 먼저 가서 기다릴 때도 있고, 뒤 처져서 등반대의 뒷모습을 담을 때도 있다. 카메라, 배터리, 망원렌즈는 물론이고 밧줄 식량 등 기본 장비도 챙겨야 한다. 무게는 줄잡아 18kg. 그는 앞으로도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박윤정 대한산악연맹 등산 강사는 13년 경력의 베테랑. 빙벽등반 전문가. 5000m급 해외원정 등반경험도 두 번이다. 대전산악구조대의 류진선, 이기열, 윤일, 양한모, 이왕영 대원은 요즘도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전문산악인들. 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귀신같이 나타난다.

|트레킹 정보|


등산 아웃도어업체 K2코리아가 운영하는 리무진버스(사진)를 싸게 이용할 수 있다. 대상은 23인 이상 27인 이하의 등산단체. 왕복 400km 이내의 당일 산행(06시∼21시). 전문가이드가 무료 파견되며 사은품이 증정된다. 1회 30만원. 가까운 K2대리점에서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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