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신생팀 우리캐피탈이 창단을 선언한 건 지난해 7월. 한국배구연맹은 우리캐피탈이 이른 시일 내에 전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수 수급 방안을 만들었다. 다른 프로 팀에서 보호 선수 9명 외에 1명씩 데려갈 수 있게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선 지난 시즌
전체 2∼5순위, 올 시즌 1∼4순위 지명권을 줬다. 하지만 우리캐피탈은 26일 현재 KEPCO45를 상대로 1승(5패)만
거뒀다.》
○ 신생팀의 다른 이름은 꼴찌?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의 첫 신생 팀은 1986년부터 제7구단으로 참가한 빙그레였다. 당시 빙그레는 신생팀으로서 선수 수급 이득을 누리지 못했다. 충청권 연고 선수와 다른 팀에서 선심 쓰듯 내준 선수들로 팀을 꾸린 빙그레가 첫해 꼴찌를 한 건 당연했다.
반면 1991년부터 제8구단으로 참가한 쌍방울은 2년 동안 2차 지명에서 먼저 10명씩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첫해인 1991년 8개 구단 가운데 7위, 이듬해 최하위로 떨어졌다. 쌍방울이 퇴출된 뒤 2000년 제8구단으로 나선 SK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4할 승률 지원’을 목표로 다른 팀에서 보호 선수 23명 외에 1명을 트레이드할 수 있게 하고 외국인 선수도 3명 보유에 2명을 출전할 수 있게 했지만 SK는 매직리그 4위(전체 승률 8위)로 꼴찌를 했고 이듬해에도 7위에 그쳤다. 우선 지명권을 얻었다고 해도 곧바로 성적을 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도 높았다.
프로농구 SK는 1997∼98시즌부터 신생 팀으로 출전했지만 최하위(10위)에 그쳤다. 당초 영입하기로 했던 서장훈이 합류하지 못한 타격이 컸다. 축구는 1987년 프로 리그로 전환한 후 여러 신생팀이 생겼지만 1994년 전북이 최하위를 하는 등 대부분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모든 일에 예외는 있는 법. 리그에 발을 내딛자마자 상위권에 오른 팀도 있다. 1997∼98시즌부터 SK와 함께 프로농구에 참가한 LG가 그렇다. 박재헌, 박규현, 양희승 등 고려대 출신에 대해 우선 지명권을 확보한 데다 버나드 블런트라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덕분에 정규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LG는 갑자기 등장한 신생팀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미 1994년 창단을 발표한 뒤 차근차근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1996년 말 선수단 구성을 마쳤고 1997년 초반 ‘원년 미니 시즌’을 지켜본 뒤 두 번째 시즌부터 출전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 팀의 실력은 실업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려대 졸업생을 한꺼번에 챙긴 LG는 기존의 실업 팀을 모태로 한 다른 팀과도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프로배구는 2005년 출범했다. 다른 종목에 비해 역사가 짧다. 하지만 LIG손해보험 박기원 감독은 “이미 프로와 대학은 차이가 크다. 김요한도 대학 때는 최고였지만 프로에 적응하는 데 2년 넘게 걸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반면 우리캐피탈 김남성 감독은 “올 시즌 신인들은 개막 후에 뽑아 아직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한다면 3라운드 이후 충분히 기존 팀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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