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순간, 책임은 무한” 고독한 승부사, 그이름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성적 나쁘면 언제든 파리목숨
스트레스성 불면증-위궤양 등
대부분이 직업병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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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지면 자다가도 벌떡
수명 1년씩 줄어드는 느낌”

#1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올 시즌 처음으로 프로농구 전자랜드 사령탑을 맡은 박종천 감독은 11일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박 감독은 당시 팀이 10연패를 당하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무게는 10kg 이상 빠졌고, 담배는 하루에 8갑까지 피웠다. 결국 두통과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한 그는 시즌 개막 후 12경기 만에 중도하차했다.

#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아르센 벵게 감독은 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 덕분에 별명이 ‘교수님’이다. 하지만 그 역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그는 한 인터뷰에서 “축구 감독으로 있으면서 화를 내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리가 아프면 축구가 없는 곳으로 무작정 떠난다”고 말했다.

○ “해보기 전까지는 그 스트레스를 아무도 몰라요”

감독은 팀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다. 팀 전체가 그의 말 한마디로 달라진다. 성적이 좋으면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권한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직결된다. 매 경기 긴장감 속에 사는 감독들에게 스트레스는 직업병인 셈이다.

프로농구 동부의 신임 사령탑 강동희 감독은 “해보기 전까지 그 스트레스를 아무도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경기에서 아쉽게 질 땐 24시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24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도 한때 스트레스로 고생을 많이 했다. ‘수비 지향적인 지도자’ 등의 비판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위궤양에 시달렸다. 한 현직 프로야구 감독은 그 스트레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어떨 때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왜 그때 투수를 바꾸지 않았지’라며 자책합니다. 이럴 때마다 수명이 1년씩 단축되는 느낌이죠.” 실제로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을 잃은 감독도 많다. 이미 고인이 된 프로야구 서영무(삼성), 임신근(태평양), 김동엽 감독(해태) 등은 과도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

○ “연습한 플레이 펼치지 못할 때는 환청까지 들려요”

감독들은 언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을까. 당장의 경기 결과보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을 때가 첫손에 꼽힌다. 경기 내용이 안 좋으면 앞으로의 전망 역시 어둡기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핸드볼 서울시청 임오경 감독은 “피 나는 연습을 하고도 코트에서 연습한 대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할 때 ‘임 감독, 바보 아니야’라는 환청까지 들린다”고 토로했다. 팀이 연패에 빠지거나 아쉽게 경기를 내줄 때는 혈압이 오르는 순간이다.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박항서 감독은 “연패 중일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고 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승부처에서 어이없는 실책으로 경기를 내주는 순간 코트를 뒤집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소속 선수의 부상도 스트레스 지수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언제나 악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프로야구 두산 김경문 감독은 “적절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덕성여대 심리학과 김정호 교수는 “명상과 취미 활동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적절히 이완시켜 줄 수만 있다면 스트레스는 독이 아닌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음주가무형 노래 부르면서 ‘엉엉’ 정면돌파형 코트서 방방뛰며 고함▼■ 감독들 스트레스 해소 백태




프로축구 강원 FC 최순호 감독은 평소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기로 유명하다. 이런 그도 훈련 때 잘되던 플레이가 실전에서 나오지 않으면 속을 끓이게 마련이다. 이럴 때 최 감독은 훌쩍 여행을 떠난다. 그는 “정동진에서 양양, 춘천까지 강원도 곳곳을 누비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며 “감독을 하면서 배운 것 가운데 하나가 스트레스를 푸는 노하우”라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감독들의 ‘숙명’이라면 푸는 것은 ‘운명’이다. 피가 마르는 승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감독마다 각양각색이다.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명상형. 산책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스트레스를 해결한다. 프로농구 KT 전창진 감독은 산책 예찬론자다. 산책은 따로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심신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감독이었던 김호, 핸드볼 용인시청 김운학 감독 등은 여행으로 긴장을 푼다.

운동, 영화감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취미생활형도 있다. 프로축구 경남 FC 조광래 감독은 골프로 마음을 다스린다. 축구 이외의 운동을 하면서 건강에도 좋고, 친구도 만나고, 스트레스까지 해소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단다.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 역시 골프를 치며 스트레스를 푼다.

고전적인 방법인 음주형 사령탑도 적지 않다. 프로야구 두산 김경문 감독은 평소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그러나 팀이 연패에 빠지거나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 한번씩 술잔에 입을 댄다. 김 감독은 “낙천적인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면서도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코칭스태프와 술자리를 갖곤 한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부터 ‘말술’로 유명했던 KCC 허재 감독 역시 술로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정면돌파형’이다. 스트레스를 그 자리에서 푼다. 김 감독은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몸이 힘들어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구로 쌓인 스트레스는 배구로 풀어야 한다”며 “열정적인 몸짓으로 고함을 지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프로야구 SK 김성근 감독도 경기를 분석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핸드볼 ‘우생순’의 주인공 서울시청 임오경 감독은 노래방이 스트레스 해소 장소다. 임 감독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기분이 후련해진다”고 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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