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고등학교 2학년 소녀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처음 핸드볼 공을 잡았을 때 ‘쿵쾅’거리는 심장의 울림을 듣고서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소녀였다. 어릴 때부터 핸드볼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왼쪽 무릎 퇴행성관절염이란 진단은 너무나 잔인했다.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이내 접었다. 핸드볼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설레는 마음이 다른 길로 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한 달에 세 차례씩 연골 재생을 돕는 강화주사를 맞고,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체력 훈련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09년 9월 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와 함께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소속팀 삼척시청이 핸드볼 슈퍼리그 코리아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벽산건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는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오뚝이’ 정지해(24) 얘기다. 정지해는 5일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꿈에도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그동안 대표팀 예비 엔트리엔 자주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임오경 오성옥 등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는 데다 왜소한 신체조건(168cm, 62kg)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세대교체를 단행한 이재용 대표팀 감독은 그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이 감독은 “지해는 순발력이 좋고 개인기가 뛰어난 데다 정신력도 강하다”며 믿음을 표시했다.
정지해는 “태극마크 달고 뛰는 걸 꿈에서도 그렸다”며 “부담은 되지만 다시 ‘우생순’ 신화를 창조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