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연, 이태현 눕히고 8년 만에 모래판 평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황규연(34·현대삼호중공업)과 이태현(33·구미시체육회)은 절친한 친구다. 황규연은 이태현의 모래판 복귀를 강력하게 권유했다. 이태현은 예전 같지 않은 몸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망설였다. 하지만 한결같이 모래판을 지킨 친구를 믿고 다시 샅바를 잡았다. 이태현은 6월 문경장사 대회 때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옛 기량을 되찾고 있다.

13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 결승. 이태현은 첫판 시작 호각 소리와 함께 상대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황규연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이태현을 모래판 끝으로 몰아붙였다. 두 명 모두 장외로 나가기 직전 이태현은 주특기 들배지기로 오랜 친구를 모래판 경계선 위에 눕혔다. 황규연은 쓰러지면서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이태현은 지난해 모래판 복귀 후 첫 우승이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황규연은 이태현을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01년 울산 천하장사에 오른 지 8년 만이다. 이들은 10월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급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결승에서 맞붙었다. 추석 대회 때 1-3으로 져 백두장사를 내준 이태현은 두 달간 맹훈련하며 설욕을 별렀지만 다시 무릎을 꿇었다.

첫판을 내준 황규연은 둘째 판을 계체승(몸무게가 가벼운 선수가 이기는 것)으로 따냈다. 이어 셋째 판을 잡채기로 이겼다. 쓰러진 이태현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태현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넷째 판에 나섰다. 쉴 새 없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어진 잡채기. 그러나 황규연은 이를 되치기로 맞받았다. 이태현의 왼쪽 무릎이 땅에 닿으며 승부는 끝났다.

승자와 패자 모두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의료진의 치료를 받을 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그동안 체중으로 버티기만 하는 지루한 씨름에 싫증났던 팬들은 이들이 선보인 빠른 경기에 환호했다.

황규연은 “내가 태현이보다 유연성에서 조금 앞선 것 같다”며 “씨름이 부활하는 시점에 우승해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현은 “우승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너무 긴장해서 경기 운영을 제대로 못했다. 아들 승준이가 경기 직후 ‘황금송아지 왜 안 가져왔냐’고 묻기에 다음에는 꼭 우승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아쉬워했다.

모래판의 귀공자(황규연)와 돌아온 황태자(이태현)의 라이벌전은 씨름 부흥을 이끌 흥행 카드로 자리 잡았다. 두 친구의 맞대결을 내년 2월 설날장사 대회에서도 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태현의 둘째 아이 출산 예정일이 설날(2월 14일)이다.

경주=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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