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연(34·현대삼호중공업)과 이태현(33·구미시체육회)은 절친한 친구다. 황규연은 이태현의 모래판 복귀를 강력하게 권유했다. 이태현은 예전 같지 않은 몸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망설였다. 하지만 한결같이 모래판을 지킨 친구를 믿고 다시 샅바를 잡았다. 이태현은 6월 문경장사 대회 때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옛 기량을 되찾고 있다.
13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 결승. 이태현은 첫판 시작 호각 소리와 함께 상대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황규연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이태현을 모래판 끝으로 몰아붙였다. 두 명 모두 장외로 나가기 직전 이태현은 주특기 들배지기로 오랜 친구를 모래판 경계선 위에 눕혔다. 황규연은 쓰러지면서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이태현은 지난해 모래판 복귀 후 첫 우승이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황규연은 이태현을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01년 울산 천하장사에 오른 지 8년 만이다. 이들은 10월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급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결승에서 맞붙었다. 추석 대회 때 1-3으로 져 백두장사를 내준 이태현은 두 달간 맹훈련하며 설욕을 별렀지만 다시 무릎을 꿇었다.
첫판을 내준 황규연은 둘째 판을 계체승(몸무게가 가벼운 선수가 이기는 것)으로 따냈다. 이어 셋째 판을 잡채기로 이겼다. 쓰러진 이태현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태현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넷째 판에 나섰다. 쉴 새 없이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어진 잡채기. 그러나 황규연은 이를 되치기로 맞받았다. 이태현의 왼쪽 무릎이 땅에 닿으며 승부는 끝났다.
승자와 패자 모두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의료진의 치료를 받을 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그동안 체중으로 버티기만 하는 지루한 씨름에 싫증났던 팬들은 이들이 선보인 빠른 경기에 환호했다.
황규연은 “내가 태현이보다 유연성에서 조금 앞선 것 같다”며 “씨름이 부활하는 시점에 우승해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현은 “우승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너무 긴장해서 경기 운영을 제대로 못했다. 아들 승준이가 경기 직후 ‘황금송아지 왜 안 가져왔냐’고 묻기에 다음에는 꼭 우승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아쉬워했다.
모래판의 귀공자(황규연)와 돌아온 황태자(이태현)의 라이벌전은 씨름 부흥을 이끌 흥행 카드로 자리 잡았다. 두 친구의 맞대결을 내년 2월 설날장사 대회에서도 볼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태현의 둘째 아이 출산 예정일이 설날(2월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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