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배고픈 허정무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4일 1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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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앞두고 당시 한국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 이 말은 인구에 널리 회자가 됐다.
한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등 막강한 팀을 꺾고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16강 진출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16강 진입은 아직 최종 목표가 아니다"며 '배가 고프다'는 표현을 쓴 것.
감독의 넘치는 의욕 속에 태극전사들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데 이어 스페인까지 침몰시키며 4강 신화를 달성했다.
필자는 큰 국제대회를 앞두고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그 어떤 분석보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말을 잘 살펴본다.
그러면 그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거둘 성적이 보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 때 축구대표팀을 이끌던 사령탑이 바로 현 한국축구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이었다.
허 감독을 필두로 현 국가대표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정해성 김현태 코치도 시드니올림픽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일원이었다. 시드니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이운재 이동국 이영표 송종국 박지성 이천수 등 막강 멤버로 구성됐다.
한국은 예선에서 B조에 속해 스페인 모로코 칠레와 경기를 갖게 돼 있었는데 문제는 막강의 스페인이었다.
허 감독을 비롯해 두 코치 모두 차분하고 큰소리치기를 싫어하는 성격.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과의 경기를 앞두고 한국 코칭스태프들은 "스페인의 전력이 너무 막강해 첫 경기가 걱정"이라며 이마에 내천 자를 그린 심각한 표정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14일 열린 경기에서 한국은 스페인에게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이후 한국은 모로코와 칠레를 각각 1-0으로 격파하고 2승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골득실 차에서 스페인에 밀려 조 3위에 그쳤고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카메룬과의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해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축구대표팀은 6개월 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같은 B조에 속해 16강 진출 티켓 2장을 다투게 된다.
그런데 9년 전 시드니올림픽 때와는 달리 허정무 감독이 하는 말에서 자신감이 넘쳐 희망을 갖게 한다.
허 감독은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팀도 없지만 못해 볼 팀도 없다"며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전략으로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시드니올림픽 때 허 감독이 "스페인이 너무 막강해서…"라며 말끝을 흐렸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말, 특히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이야말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해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
허 감독은 리오넬 메시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포진한 아르헨티나 팀에 대해서도 '힘든 상대' 라든지, '막강한 팀'이라는 표현 대신 '맞짱을 뜨고 싶은 팀'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허 감독은 이런 자신감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상대에 대한 철저한 정보 수집을 할 계획이며 내년 1월 4일부터 대표팀을 소집해 남아공과 스페인 전지훈련을 통해 전력을 다질 예정이다.
어쨌든 내년 월드컵에서 허 감독은 2002년의 4강 신화를 다시 한번 달성할 때까지는 '배가 고플 게' 틀림없다.
권순일|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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