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 송진우의 새로운 겨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23시 56분


프로야구 한화의 홈구장인 대전야구장. 입구에 걸려 있는 선수들의 대형 사진 가운데 다른 것보다 1.5배는 큰 사진이 눈길을 끈다. 올 겨울 21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끝낸 송진우(43)의 사진이다.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야구장 곳곳에는 그의 숨결이 살아 있다. 마운드 뒤편으로 보이는 외야 관중석에는 영구결번이 된 그의 등번호 '21'이 새겨진 보드판이 세워져 있다. 송진우는 22일 은퇴 후 처음으로 대전구장을 찾았다. 마운드에 다시 선 그는 덤덤했다. 그는 "늘 있던 곳이라 어색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다시 공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결같은 선수 생활을 보낸 그답게 감상에 빠지지는 않았다.

올 겨울은 송진우에게 새롭다. 그는 "21년 만에 처음으로 다음 시즌에 대한 스트레스 없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일과는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로 생각보다 바쁘게 지낸다. 골프도 자주 친다. 실력은 핸디캡 10 내외로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번 겨울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앞으로 일에 대한 생각도 많고 부담감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아쉬웠던 1년

송진우는 4월 9일 두산 전에서 통산 3000이닝 투구의 대기록을 세웠다. 4월 한 달 동안 13경기에 등판하는 등 여전한 어깨를 과시했다. 하지만 4월말 갑작스레 2군행을 통보받았다. 부상도 없는 상태였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팀은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9월 23일 LG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1타자를 상대하며 은퇴 경기를 치렀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는 "울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고 구단이 은퇴식을 잘 열어준 덕분에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쉬움으로 치면 자신의 은퇴보다 꼴찌로 추락한 팀 성적이 더하다. 그가 2군으로 내려간 뒤 한화의 팀 성적은 곤두박질치며 창단 후 두 번째 최하위라는 악몽 같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를 지켜봐야만 했던 그의 가슴은 더욱 아렸다.

송진우는 후배들이 오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에서 지면 격려는 물론 독려가 있어야 나아질 수 있는데 애들이 너무 서로 격려만 하더라"고 했다. 평생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해 온 그였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에 대해 여전히 큰 기대를 보였다. 그는 "양훈, 유원상 등 한화의 젊은 투수들의 몸은 메이저리그급"이라며 "근성을 키우고 자신만의 투구 리듬을 발견한다면 대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리듬을 키우기 위한 그의 조언은 많이 던져 보라는 것. 선수 시절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그는 가장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새로운 한국 야구 그리고 새로운 송진우

초대 회장으로 송진우가 기틀을 닦은 프로야구 선수협회는 얼마 전 노조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노조 설립을 둘러싼 논란을 보는 그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는 선수들 스스로의 협조가 부족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초대 회장으로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노조 설립을 구단에서도 함께 사는 길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야구의 발전과 함께한 그는 절대 야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팬들이 남아 있으라고 하면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웃었다. 그는 내달에는 일본 코치 연수 계획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그가 야구판을 떠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두 아들 때문이다. 첫째 우석(16)은 천안북일고 강타자다. 둘째 우현(13)은 온양중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뛰며 투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둘째 아들은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좌투좌타로 바꿨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면서 야구는 원래 왼손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훌륭한 지도자로, 야구 선수의 아버지로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21년 동안 선수로 뛰면서 행복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대전=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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