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한국 산악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무엇보다 고산 등반과 산악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크게 증가한 점이 중요하게 기록될 만하다. 박영석(47)은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었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새 길을 낸 것이다. 오은선(44)과 고미영은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역사를 쓰기 위해 거침없이 산에 올랐다. 둘이 보여준 열정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고미영은 안타깝게도 7월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 등정 후 하산 도중 사망했다. 오은선은 5월에 오른 칸첸중가(8586m)의 등정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다.
○ 철의 여인 다시 ‘풍요의 여신’ 앞으로
한 계단 더 도약을 꿈꾸는 2010년 한국 산악의 화두는 안나푸르나(8091m)이다.
올해는 안나푸르나 등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50년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그와 루이 라슈날이 안나푸르나 정상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중 인간이 가장 먼저 정상을 밟은 산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뜻이다. 가장 먼저 네팔로 떠나는 이는 오은선이다. 그는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에 나섰지만 강한 바람에 막혀 돌아섰다. 2009년 한 해에만 4개 봉우리를 잇달아 오른 그였지만 마지막 관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는 3월 초 안나푸르나에 도전한다. 경쟁자인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은 올봄 안나푸르나와 시샤팡마(8027m)에 잇따라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은선이 등정에 성공한다면 그는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타이틀을 얻게 된다. ○ 안나푸르나에 새 길 뚫릴까
박영석은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 후 “남은 8000m 이상 13개 봉우리에 모두 새 루트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약속의 땅으로 안나푸르나를 택했다. 3월 중순경 출국한다. 그가 코리안 루트를 뚫고자 하는 곳은 안나푸르나 남벽. 오은선이 택한 북벽의 반대편이다. 남벽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험난하기로 유명해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자의 70% 이상은 북벽으로 올라갔다.
모험 정신과 더불어 남다른 탐구 노력으로 많은 주목을 받는 김창호(41)도 안나푸르나에 도전한다. 그는 홍보성 대장(54)이 이끄는 부산연맹 원정대 소속으로 칸첸중가 등정 후 안나푸르나로 향할 예정이다.
또 한 명의 젊은 산악인 김미곤(38)도 안나푸르나 등정 발걸음에 함께한다. 그는 현재 도로공사 산악팀 소속으로 2007년 로체(8516m)와 에베레스트(8848m)를 연속 등정하는 등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6개를 올랐다. 그는 3월 말 마나슬루(8163m)를 거쳐 5월 초 안나푸르나로 향한다. 고미영의 등반 파트너였던 김재수(49)의 도전도 이어진다.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 등반에 나섰다 눈사태를 맞고도 살아온 그는 “김재수 독한 놈입니다”라고 말하며 꺾이지 않은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가을 한국 원정대 네 팀이 안나푸르나로 향했지만 누구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올봄에는 그보다 많은 팀이 안나푸르나 여신의 마음을 두드린다. 과연 풍요의 여신은 응답할까.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험해… 한국인 9명 등정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는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중 가장 먼저 인간의 숨결을 허락했다. 하지만 1950년 첫 등정 후 20년 동안 안나푸르나를 오른 사람은 없다. 그리고 2009년까지 주봉(8091m) 기준으로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은 이는 한국인 9명을 포함해 157명으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우리 중 등정자가 가장 적다.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 등정자는 4500여 명에 이른다. 반면 안나푸르나에서 숨진 산악인은 60명이나 된다. 에베레스트에서의 사망자가 200여 명인 걸 감안하면 매우 많은 수치다.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전체 사망자 60명 중 5명이다. 한국 원정대에 포함된 셰르파로 사망한 이까지 포함하면 14명. 그만큼 한국과는 악연이 많다. 대표적인 사고가 1999년 한국 여성 최초로 1993년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이 실종된 것이다. 그는 한국-스페인 합동 안나푸르나 원정대에 참가해 정상을 밟았지만 캠프3(7500m)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원정대를 이끌었던 엄홍길(50)은 안나푸르나 도전 다섯 번 만에 정상에 섰지만 그동안 대원 3명을 잃었다.
안나푸르나는 등정 논란으로도 한국과 악연이 깊다. 여성 산악인 김영자는 1984년 겨울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하산 도중 셰르파가 카메라가 담긴 배낭을 잃어버려 정상 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그의 등정은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9월에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히운출리(6441m)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충북 직지원정대 박종성 민준영 대원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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