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작전이 따로 없었다.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마침내 '잠입'에 성공한 순간 우리는 마치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비밀스런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이지리아가 잠비아와 더반에서 연습경기를 치른다는 첩보가 처음 들어온 것은 5일 오후(이상 현지 시간). 잠비아와 9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평가전을 치르는 한국이 잠비아의 일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보고를 받은 허정무 감독은 지체 없이 박태하 코치와 김세윤 기술분석관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나이지리아가 전력 노출을 꺼려 훈련장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보내는 게 낫다"는 게 허 감독의 판단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는 나이지리아에 대한 정보는 중요했다. 잠비아와 경기를 치르는 한국으로선 이 경기가 요긴한 자료로 쓰일 수도 있었다.
기자는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이들과 동행해 6일 오전 9시 러스텐버그를 출발해 2시간 만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이어 항공편으로 더반에 이동해 오후 2시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장 주변의 경계는 예상보다 더 삼엄했다. 경기장에서 반경 100m가량 떨어진 곳에 담장이 쭉 둘러져 있었다. 출입구는 오직 한 곳밖에 없었다. 보안 담당자는 앵무새처럼 "No(노)!"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는 게 그가 한 말의 전부였다. 2시간 동안 경기장 주변을 다섯 바퀴나 돌면서 방법을 찾았지만 방법은 없어보였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려는 순간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보안 담당자가 카메라 등 촬영 장비를 반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기장 출입을 허용한 것. "한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경기를 보러 왔다"는 읍소와 축구 얘기를 끊임없이 하며 친근함을 보인 덕분인지 얼음 같던 보안 책임자의 마음이 녹은 듯했다.
경기장에 들어와서도 감시의 눈초리는 계속됐다. 수첩에 메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관계자가 수시로 다가와 "뭘 하느냐"고 물어 봤다. 그 때마다 "팬인데 사인을 받기 위해 수첩을 가지고 왔다"고 둘러댔다. 사진은 김 분석관이 가져 온 휴대전화 카메라로 해결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 코치는 "이제 감독님을 뵐 낯이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김 분석관도 "태극전사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청신호가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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