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발트 경기장. 이날 열리는 브라질-유고슬라비아의 1974서독월드컵 개막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던 관중들은 불평을 쏟아냈다.
베레모를 눌러쓴 특공대원들이 실탄을 장착한 기관총을 들고 경기장 구석구석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좌석에 앉기까지 무려 6단계의 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
관중석도 살풍경했다. 셰퍼드를 대동한 경찰들이 사나운 눈초리로 사방을 살피며 돌아다녔고 곳곳에 무전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특수요원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시작해 2006년 독일까지 총 18번의 대회가 치러진 월드컵축구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했던 대회는 1974년 서독월드컵이었다.
서독월드컵이 열리기 2년 전인 1972년 서독의 뮌헨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아랍 게릴라 조직인 '검은 9월단'이 선수촌을 습격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참살한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11명)와 경찰 등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되자 1974년 월드컵을 유치한 서독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뮌헨 시 한곳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도 테러에 구멍이 뚫렸는데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등 9개 도시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서독 정부는 결국 군대 동원을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군대의 동원을 허락해 줄 수 있는 서독 의회. 500여 명의 서독 국회의원들은 거의 전원이 축구광이었고 월드컵 대회 개막 전부터 분위기에 들떠 의사당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
아무리 소집공고를 발표해도 월드컵에 푹 빠진 국회의원들은 감감 무소식.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소집하여 군대 동원령을 통과시켰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특공대들이 기관총을 든 채 경기장에 투입됐던 것.
2002한일월드컵 때의 안전 대책도 1974년 월드컵 못지않았다.
바로 한 해 전인 2001년 9·11테러가 미국을 강타한 이후 중동 지역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어 전 세계의 눈이 쏠리는 월드컵 무대야말로 테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
그래서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경찰은 물론 군의 협조로 여러 차례의 모의훈련을 통해 테러 방지 대책을 세웠고 10개 월드컵경기장에는 비행기 등을 이용한 공중 테러에 대비해 사거리 600m에서 5.3㎞에 이르는 대공미사일망이 설치됐다. 여기에 경기를 앞두고는 전투기가 경기장 상공을 비행하며 감시망을 펼쳤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을 불과 5개월 앞두고 9일 토고축구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무차별 총격이라는 또 하나의 흉포한 테러가 발생했다.
토고대표팀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개막을 앞두고 전지훈련지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앙골라 국경선을 넘어서 국경도시 카빈다를 지나다 무장 괴한에게 총격을 받았고, 버스 운전기사와 팀 대변인, 코치 등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치는 변을 당했다.
제19회 월드컵 개최국인 남아공도 앙골라만큼 치안이 불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에 따르면 남아공에서 2007년 살인은 1만8487건으로 하루 평균 50.6건이, 강도는 18만3297건으로 하루 평균 502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강간과 절도도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207개국으로 유엔 가맹국(192개국)보다 많다. 그래서 월드컵축구대회를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부른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을 지구촌 축제로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군대 동원령을 포함해 남아공이 개최국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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