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물살 가르는 박태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2일 19시 06분


박태환(21·단국대)은 요즘 홀가분하다. 지난해 7월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3종목(자유형 200m, 400m, 1500m)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한 그는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 그는 "세계선수권 부진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여유를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한창이었다. 3주 만에 역기를 잡아서인지 기구를 들 때마다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다리를 절룩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 중간에 트레이너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힘들어도 즐기면서 운동하는 것, 박태환의 원래 모습이었다.

"열정이 식었다고요? 운동선수에게 그 말은 CPU 없는 컴퓨터, 빈껍데기라는 말이죠."

박태환은 로마 세계선수권 부진 이후 '열정이 없다' '훈련은 안 하고 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종목(400m)에서 1년 만에 예선 탈락을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에게는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됐다.

그는 "훈련은 올림픽 전이나 후나 한결같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빛과 어둠이 확실한 운동선수로서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고 말했다. 담담히 말하는 모습에서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 마냥 좋았던 2009년 1월과 훈련밖에 몰랐던 2008년 1월

꼭 1년 전인 지난해 1월 박태환은 최고였다. 부진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때는 몸 상태와 기분 모두 좋았기 때문에 훈련만 열심히 하자는 편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즐기면서 운동하자'는 마음가짐은 비슷하다. 물론 처지가 변했다. 1년 전은 최고의 성과를 거둔 뒤 맞이한 따뜻한 겨울이었다.

지금은 좌절을 맛본 뒤 보내는 약간 추운 겨울이다. 로마 세계선수권을 다녀온 뒤 보낸 시간은 그야말로 방황의 연속이었다. 한 때 운동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그를 잡아준 건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방황하는 아들에게 "네가 하기 싫으면 관둬도 좋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지구가 폭발해도 남을 역사를 다시 한 번 써야 되지 않겠니"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강한 마린보이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비장함이 더해진 올해 1월은 2년 전과 비슷하다. 2008년 1월 박태환은 그저 수영만 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3관왕에 올랐고 2007년 3월 멜버른 세계선수권 400m를 제패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슬럼프에 빠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마음을 다잡았고 오로지 운동에만 매진한 결과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역사를 썼다.

● 다시 웃을 2011년 1월을 기다리며

박태환은 16일 호주 브리즈번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새로 영입한 마이클 볼 코치가 있는 곳이다. 8일 기자회견 후 박태환이 수영하는 모습을 처음 지켜본 볼 코치는 "중심 이동을 아주 잘한다. 스트로크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호주는 박태환에게 기회의 땅이다.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을 통해 국제적 스타로 발돋움했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호주에서 몸을 만들곤 했다. 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 부진 이후 마음을 추스른 곳도 호주다. 박태환은 "호주는 외국 같지 않고 지방에서 훈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여건만 된다면 계속 호주에서 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환의 올해 훈련 스케줄은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맞춰져 있다. 그의 부활 여부를 가늠할 무대다. 아시아경기이긴 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 800m 금메달, 400m 동메달을 딴 중국의 장린과 순양(1500m 동메달) 등이 버티고 있어 만만치 않다. 특히 장린은 베이징 올림픽 후 방에 박태환 사진을 걸어놓고 와신상담해 로마에서 박태환을 넘어선 선수다.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끝나면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1년 후 박태환의 겨울은 따뜻할까.

"2011년 1월이요? 새 계획을 짜고 있을 것 같아요. 마음 편하게…."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유재연 인턴기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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