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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사진)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천재투수로서는 뒤늦게 입문한 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육상선수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달려봤자 얼마나 달렸겠나 싶겠지만 김 감독은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육상의 기대주였다. 전국체전(당시는 소년체전이 없었다)에서도 100m와 400m 계주에 나가 3(4)위(몇 위를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고 했다)에 오르며 범상치 않은 끼를 발산했다.
김 감독이 육상을 하게 된 건 포항중앙초등학교 시절 반 대항 달리기대회에서 얼결에 1등을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학교 대항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도 대표로 뽑히게 됐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뛰다보니 도 대표까지 하게 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7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육상 인지도는 현저히 낮았다. 게다가 서울도 아닌 포항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열심히 뛰었다. 광목을 누벼 모래를 채운 주머니를 종아리에 1개씩 차고 흙먼지 나는 운동장을 돌며 구슬땀을 흘렸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김 감독은 육상부가 있는 포항중학교에 배정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활동시간 반 대항 야구대회에 나갔다가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포항중학교 야구부를 맡고 있던 감독은 발이 빠르고 공 던지는 감각이 남다른 김 감독의 소질을 꿰뚫어봤다.
특히 타 학교 교감선생님이었던 아버지 친구인 포항중학교 교장선생님의 강력추천으로 결국 글러브를 끼게 됐다.
김 감독은 “처음에는 재미가 없어서 야구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아버님이 ‘육상도 잘 했으니 야구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 순간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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