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야구인생’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자식같은 선수 내주는 심정 아십니까”《아무리 뛰어난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이라도 운장(運將)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능력보다 운이 먼저라는 얘기다.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52). 프로야구 최초로 100승 고지를 밟은 최고의 투수였고 투수왕국 현대를 만들어낸 최고의 코치였다. 하지만 2007년 처음 감독이 된 이후 그는 운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전지훈련 출발을 앞둔 김 감독을 만났다. 그는 “선수 때도 운은 없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 감독은 현대 투수코치로 있던 2005년 시즌이 끝나고 KIA의 수석코치 영입 제의를 받았다. KIA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이택근 트레이드 처음엔 강력 반대
구단 사정 듣고 나서 고집 접어

‘히어로즈 꼴찌’ 예상 자존심 상해
선수들과 역경극복 사례 만들고 싶어”


세상 걱정 다 떠안은 표정이다. 팀의 주축 선수 셋을 떠나보낸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운은 선수 때부터 없었다”며 굴러들어오는 복 같은 건 오래전에 포기했다는 그가 올 시즌 거친 풍랑을 헤치고 히어로즈호를 어떻게 이끌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훈구 기자
세상 걱정 다 떠안은 표정이다. 팀의 주축 선수 셋을 떠나보낸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운은 선수 때부터 없었다”며 굴러들어오는 복 같은 건 오래전에 포기했다는 그가 올 시즌 거친 풍랑을 헤치고 히어로즈호를 어떻게 이끌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훈구 기자
“구단 상황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옮겼을지도 모른다. 팀이 어려운데 나 혼자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함께하던 사람들 등에 비수를 꽂기 싫었다.”

2006년 10월 그가 모시던 김재박 감독은 LG로 떠났다. 그는 “눈치도 못 챘다”고 말했다. 약 2주 뒤 김 코치는 감독이 됐지만 그가 지휘봉을 잡은 현대호는 빠르게 침몰해갔다. 이듬해 초부터 농협, STX, KT 인수설이 잇달아 터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팀을 제대로 운영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2007년 6위의 성적을 끝으로 현대는 간판을 내렸다. 창단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현대를 승계한 팀이 히어로즈였다. 우여곡절 끝에 선수들은 남았지만 김 감독은 해임됐다.

“2008년 2월 4일 원당구장에서 선수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지금은 뜻을 못 이루고 헤어지지만 사람의 인연은 질기다. 우리가 언제 또 만날지 모른다’고 했다. 물러날 각오는 했지만 막상 겪어 보니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8개월 만에 선수들 곁으로 돌아왔다. 자신도 놀랐고 선수들도 놀랐다.

창단 첫해인 2008년을 파란만장하게 보낸 히어로즈는 김시진 감독 체제로 2009년을 맞았다. 미국 플로리다로 전지훈련도 떠났고 일방적으로 깎였던 선수 연봉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첫 시즌을 무기력하게 보낸 선수들은 ‘큰형님’ 김 감독의 합류에 힘을 냈지만 메인스폰서를 구하지 못한 히어로즈의 살림은 나아질 게 없었다. 할부로 끊은 가입금을 마련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선수를 팔아 운영비를 마련할 것이라는 소문은 현실이 됐다. 히어로즈는 2008년 시즌 뒤 장원삼을 30억 원에 삼성에 내주려다 다른 구단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원삼은 그때 옮기는 게 나을 뻔했다. 결국 이번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지난 1년 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다.”

장원삼과의 이별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문제는 장원삼 한 명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장석 대표가 만나자고 하더니 이택근 트레이드 얘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사정을 듣고 보니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그래서 진행 중인 일이냐, 이미 결정된 일이냐고 물었다. 진행 중이라는 말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면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이 대표가 감독과 의논도 하지 않았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

김 감독은 이택근에게 트레이드 사실을 전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얼굴을 보면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 문자로 보낸다’고 휴대전화에 적어 보냈다. 며칠 뒤 김 감독은 다시 이 대표를 만났다. 투수 이현승과 장원삼도 보내기로 결정했다. 김 감독은 “이현승을 돈만 받고 내줄 수 없었다. 공백을 메워줄 선수를 함께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두산 금민철을 받았다. 한 가지 더 요구했다. 선수 3명의 트레이드 신청을 한꺼번에 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선수들의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레이드가 결정된 뒤 김 감독은 이현승과 통화를 했다. 울먹이는 이현승을 이렇게 달랬다. “네 희생으로 다른 선수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네가 마음 편하게 생각해야 나도 덜 아프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히어로즈에 대한 팬들의 비난은 거셌다. ‘선수 장사’라는 표현은 물론이고 히어로즈 때문에 프로야구가 엉망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김 감독은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히어로즈가 꼴찌할 거라는 얘기에는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자식 같은 선수를 여럿 내줬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기존 선수들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히 ‘미치는 놈’도 나올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어렵게 야구하지 않았다. 다른 구단 선수들과 똑같이 세 끼 좋은 음식 먹었다. 유니폼 대신 팬티 입고 운동했나? 호텔 대신 여관에서 잤나? 전지훈련 못 갔나? 다 똑같이 했다. 오히려 히어로즈는 모기업 지원 없이도 버텨왔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어려운 구단을 위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싶다.”

김 감독은 “솔직히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손때가 묻은’ 선수들과 함께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그의 목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제 감독으로 겨우 두 시즌을 보냈을 뿐이다.

“히어로즈가 불안해 보일 수 있지만 절망 속에도 희망은 있다. 많지 않은 히어로즈 팬에게 그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 가혹한 운명이라고 도망치면 안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운장’을 포기한 김 감독의 불운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 영웅(히어로)은 난세에 등장하는 법이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