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맨’ 지성, ‘기댈 맨’ 청용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본보, 남아공 전훈 끝낸 월드컵 대표팀 설문조사

《“지성이 형만 믿어야죠.” 분위기를 결정지을 첫 판에서는 역시 노련한 선배에게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 신예 미드필더 구자철(제주)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그리스와의 첫 경기에서 대표팀 키 플레이어로 ‘대형 엔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지목했다. 유럽에서 오래 뛰었고 큰 경기 경험이 많은 박지성이 조직력이 뛰어난 그리스를 꺾는 데 앞장설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조직력 뛰어난 그리스전때
“경험 많은 박지성이 앞장” 1위
수비수 발느린 나이지리아전엔
“발 빠른 이청용이 흔들어줘야”


【1】조별리그 상대국별 키플레이어는?

동아일보가 15일 남아공 전지훈련을 끝낸 대표팀 선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단독 설문조사에서 조별리그 상대국별 한국의 키 플레이어를 물은 결과 응답자 20명 중 9명은 그리스와의 1차전 키플레이어로 박지성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다.

‘캡틴’ 박지성이 중심을 잡아 줘야 공격과 수비 모두 숨통이 트일 거라는 얘기다. 박지성은 특히 미드필더 7명 중 4명으로부터 표를 받아 중원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팀 내 에이스로 거듭난 ‘블루 드래건’ 이청용(볼턴)은 5표로 2위. 박주영(AS 모나코)과 기성용(셀틱)이 각 2표였다.

2차전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과 이청용, 기성용이 나란히 가장 많은 4표를 얻었다. ‘수문장’ 이운재(수원)도 3표를 얻어 눈길을 끌었다. 중앙수비수 강민수(수원)는 “공격력이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아르헨티나를 상대할 때는 운재 형의 역할이 핵심”이라고 내다봤다.

미드필더 김정우(광주)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고지대에서 열린다. 슈팅이 변화무쌍해지는 고지대에선 골키퍼의 능력이 승부의 열쇠”라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선 이청용이 가장 많은 8표를 얻었다. 이청용은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 등 모든 포지션에서 고르게 표를 얻었다. 수비수 이정수(가시마 앤틀러스)는 “나이지리아 수비수들은 순발력이 떨어지고 침투 패스에 약하다”며 “청용이가 빠른 스피드로 흔들어 줘야 우리가 공격 템포를 지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성용과 박지성은 3표. 측면 수비수 오범석(울산)도 3표로 비중 있게 나왔다. 나이지리아 측면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범석의 오버래핑이 빛을 발할 거란 생각이다.

조별리그 3경기를 통틀어선 이청용이 가장 많은 지지(17표)를 얻었다. 대표팀의 ‘심장’ 박지성은 간발의 차(16표)로 2위. 기성용(9표)과 박주영(6표)도 동료들의 신뢰를 받았다.

【2】16강 가능성은?
25명중 19명이 “50% 이상”

본선 최대의 관심사는 역시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상대하는 국가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어느 한 팀도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의 자신감은 넘쳤다. 조사 결과 25명 중 12명이 한국의 16강 가능성을 ‘50% 이상 70% 미만’으로 봤다. ‘70% 이상’을 선택한 선수도 7명이나 됐다. ‘30% 이상 50% 미만’은 6명이었으며 ‘30% 미만’은 없었다. 공격수 염기훈(울산)은 “가슴에 ‘호랑이(축구 대표팀의 상징)’를 단 선수 중 한국의 16강 진출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조별리그 성적 전망’은 ‘1승 2무’(10명)가 가장 많았다. ‘2승 1패’(7명)가 다음이었고 ‘2승 1무’(4명), ‘1승 1무 1패’(3명), ‘3승’(1명)이 뒤를 이었다. 미드필더 김두현(수원)은 “개인 기량 면에선 현재 대표팀이 역대 최고”라며 “조직력만 가다듬으면 6월에 붉은악마들이 환호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태극전사들이 월드컵 이전에 평가전을 통해 “가장 붙어보고 싶다”고 꼽은 상대는 어디일까. 3개 국가까지 복수 응답이 가능한 질문에서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8명)이 1위를 차지했고, ‘무적함대’ 스페인(7명)이 그 뒤를 쫓았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4명)는 3위.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가나, 코트디부아르(이상 3명)도 나왔다. ‘죽음의 조’에서 이변을 꿈꾸는 북한을 선택한 선수도 2명이 있었다.

포트 엘리자베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3】승패 가를 최대변수는?
수비수들은 “체력”
공격수는 “개인전술”

축구는 작은 변수 하나에도 이변이 쏟아진다. 개인 기량 외에도 기후, 고도, 잔디 상태 등 다양한 변수가 승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예상치 못한 주변 변수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이미 대표팀은 잠비아 및 현지 프로팀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그 위력을 실감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꼽은 월드컵 최대 변수는 무엇일까. 대표팀 선수 25명은 체력을 1위로 꼽았다. 6가지 조건(기후, 경기장 여건, 체력, 조직력, 전술, 개인 전술) 가운데 3가지를 차례대로 선택하도록 한 질문에서 체력은 48점(첫 번째 선택은 3점, 두 번째는 2점, 세 번째는 1점을 부여해 합산)을 얻었다.

특히 수비수 9명 중 7명이 첫 번째 선택으로 체력을 꼽았다. 측면 수비수 오범석(울산)은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체격과 힘이 좋아 이들을 상대로 90분을 버티려면 강철 체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요하네스버그의 고지대에서 열린다. 선수들이 체력을 강조한 또 다른 이유다.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장신 공격수 김신욱(울산)은 “고지대에선 역시 체력이다. 90분 동안 압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뒷받침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2위는 ‘조직력’(28점). 조직력은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등 포지션에 상관없이 중요한 변수로 선택됐다. ‘경기장 여건’(24점)과 ‘기후’(20점) ‘개인 전술’(19점)이 조직력의 뒤를 이었다. 특이한 건 미드필더들은 경기장 여건을 중요한 변수로 꼽았지만 공격수들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

공격수들은 모든 항목 가운데 오히려 개인 전술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한 이동국(전북)은 “수비수들은 볼 처리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공격수들은 주로 돌파 능력 등 개인기로 평가받는다. 그렇다 보니 차이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감독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인 ‘전술’(11점)은 선수들로부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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