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 방송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광기에 사로잡힌 히틀러 정권 치하에서 독일 과학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관련 발명품들을 엄청나게 생산해 냈다.
그중 하나가 탱크였다. 2차 대전 초반 독일 탱크에 연합군은 맥을 추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가 독일은 탱크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무선망을 갖추고 있어서 긴밀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공략하는데 비해 연합군 탱크는 서로 연락을 할 수있는 네트워크가 없어서 지리멸렬했던 것. 물론 이를 간파한 연합군 측도 탱크끼리 교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서 후에는 접전을 펼쳤다고 한다.
성격은 다르지만 전쟁처럼 승리를 목표로 하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단체 종목은 선수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작전타임 시간에는 감독의 지시를 받으며 의사를 교환하고 경기 중에도 선수들끼리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며 소통을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대표팀을 맡고 있던 시절 고참 선수들이 약간의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나선 히딩크 감독이 당시 갓 스무 살을 넘긴 박지성 이천수 등 어린 선수들에게 서른이 한참 넘은 홍명보 황선홍 김태영 등을 명보 선홍 태영 등 이름을 부르라고 지시한 것.
고참 선수 몇 명이 불만을 내비쳤지만 히딩크 감독은 의사소통의 한 방편으로 줄기차게 강조를 했고 그의 의중을 파악한 선수들은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다.
사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축구 선수들은 벤치에서 감독이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거의 안 들린다'고 한다.
특히 이닝마다 혹은 쿼터나 세트 별로 여러 차례의 작전 타임 시간이 있어서 감독의 지시를 받고 선수 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야구나 농구 배구 등 다른 단체 종목에 비해 축구는 하프타임 때 단 한번 감독과 선수 간에 그리고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의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리는 종목 특성 상 축구는 경기를 하면서 순간순간 작전을 지시하고 선수들끼리 소통할 수 있게 해 유기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 필요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는 홍명보 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이 역할을 해내며 한국축구의 4강 신화를 이루는데 한몫을 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축구대표팀에서 '그라운드의 사령관'은 누가 해낼까.
현 대표팀은 이운재(37), 이영표(33), 이동국(31) 등 아저씨 선수들부터 이청용(22), 기성용(22) 등 '젊은 피'까지 속해 있다.
2002년에는 대표팀의 맏형 격인 홍명보가 했으니 이번에는 가장 어린 이청용이나 기성용에게 이 사령관 역할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이영표나 이동국이 경기 중 갑자기 뒤에서 "영표, 동국 제대로 못 뛰어"라는 어린 후배의 질책이 들려오면 정신이 버쩍 들지 않을까.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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