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서 동지로’ ‘제자가 감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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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30일 03시 00분


롯데 2군 지도자 3人의 18년 세월이 맺어준 묘한 인연

현역 시절 적으로 만나 명암이 갈렸다. 이제는 한배를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롯데 2군에서 지도자로 함께 일하게 된 1992년 한국시리즈(롯데-빙그레)의 주역들. 왼쪽부터 박정태 감독, 염종석 재활코치, 이강돈 타격코치.
김해=한우신 기자
현역 시절 적으로 만나 명암이 갈렸다. 이제는 한배를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롯데 2군에서 지도자로 함께 일하게 된 1992년 한국시리즈(롯데-빙그레)의 주역들. 왼쪽부터 박정태 감독, 염종석 재활코치, 이강돈 타격코치. 김해=한우신 기자
1992년 빙그레(현 한화)와 롯데의 한국시리즈 5차전. 9회 마지막 공격에서 2-4로 뒤진 빙그레 양용모가 받아친 타구는 2루수 박정태에게 굴러갔다. 박정태는 두 손을 번쩍 들었고 1루 주자를 2루에서 아웃시키며 경기는 끝났다. 시리즈 4승 1패로 롯데의 통산 두 번째 우승. 얼싸안은 롯데 선수들 가운데에는 팀 우승을 이끈 괴물 고졸 신인 염종석이 있었다. 이 장면을 씁쓸하게 지켜보던 빙그레 더그아웃에는 주장 이강돈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박정태(41), 염종석(37), 이강돈(49).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희비가 엇갈린 이들은 당시 프로야구의 대표 스타였다. ‘미스터 롯데’ 박정태는 열정과 끈기의 대명사로 통한다. 염종석은 1992년 혜성처럼 나타나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1989, 1990년 최다 안타왕을 2년 연속 수상한 이강돈은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핵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올해는 롯데 2군 코칭스태프라는 한배를 탔다. 박정태는 2군 타격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됐고 염종석은 재활코치, 이강돈은 타격코치로 선임됐다. 이들 외에도 올해 롯데 2군 코치진은 ‘1992년 한국시리즈’로 얽힌다. 마지막 2루 땅볼을 친 양용모는 배터리코치, 롯데 마운드의 한 축으로 당시 한국시리즈 2, 5차전 선발투수였던 윤형배는 투수코치다.

이강돈은 롯데에서 2004년(1군), 2005년(2군) 타격 코치를 지냈다. 박정태가 선수로서 마지막 해였던 2004년 그는 코치였다. 코치-선수가 코치-감독으로 다시 만난 묘한 인연이다.

○ 한배를 탄 3인의 스타

28일 롯데 2군 선수단이 훈련 중인 김해 상동구장에서 만난 박정태 감독은 “코치보다 나이가 어려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팀을 이끄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강돈 코치도 “감독이라는 자리가 나이와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서로를 ‘이 코치님’, ‘박 감독’이라 부른다. 선후배 관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

박 감독은 이 코치에 대해 “최고 수준에 오른 선수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타격 지도는 전적으로 맡긴다”고 했다. 이 코치는 박 감독에 대해 “선수 시절 가졌던 카리스마에 선수들을 믿고 이끄는 인화력이 더해졌다. 지도자로 대성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박 감독과 이 코치는 선수 시절 ‘깡’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들이었다. 염종석 코치는 둘에 대해 ‘무서운 선배들’이라고 말한다. 세 번이나 팔꿈치 수술을 한 염 코치는 “내가 재활을 많이 해봐서 후배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 함께 꾸는 지도자의 꿈

이 세 명의 올 시즌 목표는 롯데 2군의 4년 연속 리그 우승. 이들은 “현재 선수들과 코치진이 하나로 뭉쳐 8개 구단 중 가장 좋은 분위기에서 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힘을 합친 이들이 그리는 미래도 비슷하다. 야구판을 떠나지 않고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 세 명은 서로를 ‘언젠가는 1군 감독을 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염 코치는 “지도자 생활의 첫해인 만큼 모든 걸 다 쏟아 붓겠다”고 했다. 이 코치는 이번에 청주고 감독을 그만두고 롯데로 오면서 청주고 제자 및 학부모에게 “고교 선수들이 꿈이 있듯이 나이가 쉰이 다 된 나도 꿈이 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말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하겠다’는 대답부터 먼저 하고 고민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일단 부딪친다. 넘어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난다. 세 스타의 지금은 선수 시절 모습과 다르지 않다.


김해=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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