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57)의 얼굴은 요즘 유난히 밝다. 7일 태어난 친손녀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6일 일본 구마모토로 전지훈련을 오면서 손녀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지켜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면서 “(차)두리하고 똑같이 생겼네”라며 즐거워했다.
○ 축구만 사랑한 순수함이 낳은 오해
“독일에 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어요. 운동에 방해가 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후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었죠. 오로지 집하고 훈련장만 오갔어요. 그래서인지 저에 대한 부정적인 말도 많이 나왔어요. 이해합니다. 그래도 전 유럽 선수들 틈에서 살아남아야 했어요.”
“제가 인터뷰도 안 해준다고요? 오해예요. 알고 보면 저도 부드러운 사람인걸요.” 수원 삼성 차범근 감독은 요즘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7일 아들 차두리와 똑 닮은 손녀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손녀 얘기를 하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다. 구마모토=양종구 기자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외국인으로는 가장 많은 98골을 터뜨리며 ‘차붐’ 열풍을 일으켰던 차 감독. 역대 한국이 낳은 최고의 축구선수인 그는 구마모토 테르사호텔 607호에서 8일 밤 격의 없이 치러진 인터뷰에서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인터뷰도 안 해준다는 등 일부에서 말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언제든 편안하게 얘기하세요. 저는 한 번 사귄 사람은 평생 갑니다”라고 말했다.
세간에 알려진 차 감독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빅리그를 정복한 최고의 스타라는 평가가 하나. 자기밖에 모른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다른 하나.
“파워가 넘치는 유럽 선수와 고무공 같은 탄력을 가진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하려면 동양인인 저는 두 배 이상 노력해야 했어요. 잘 먹지 못했던 고기도 억지로 많이 먹었어요. 그래야 푹푹 빠지는 독일 잔디에서 뛸 수 있죠.”
오로지 축구 하나만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뒤처졌다. 그랬기에 이 자리까지 왔다. 지금도 축구가 가장 최우선이다. 지인들은 차 감독을 가리켜 “너무 순수해서 탈”이라고 말한다.
○ 정신력만 보강하면 요즘 선수들이 더 강하다
“요즘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사람 있나요. 도서관에서 이어폰 꽂고 공부하잖아요. 선수들도 마찬가지예요. 축구만 하라고 하면 금세 질려버릴 거예요. 이제 그 친구들 스타일에 제가 맞춰 가야죠.”
차 감독은 신세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러 것에 관심이 많아 집중하지 못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큰 경기에 나서도 경직되지 않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박주영(AS 모나코) 등 유럽파가 양산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차 감독의 분석.
“하지만 정신력은 우리 때보다 떨어져요.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하면 안 되죠. 어떻게 관리해야 살아남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동안 축구 천재 소리를 듣다 소리 없이 사라진 선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참 안타까워요.”
차 감독은 철저하게 훈련 스케줄을 짠다. 그런 훈련 패턴 속에서 선수들이 자기 관리를 하는 법을 스스로 습득하게 한다. 역할 모델도 설정한다. 36세의 노장이면서도 현역 공격수로 활약하는 김대의를 플레잉코치로 내세웠다. 늘 성실하게 훈련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에 진출했다 임대 선수로 복귀한 조원희에게 주장을 맡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팬들이 즐거운 축구로 승부
“우승요? 다른 팀들은 훈련 안 하나요. 장담할 수 없어요. 그저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을 수 있게 재밌는 축구를 해야죠.”
올 시즌 목표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우승이 중요하긴 하지만 먼저 팬을 생각해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2008년 K리그에서 우승한 뒤 지난해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가 힘겨웠지만 올해는 선수 보강에 성공해 훨씬 나은 전력을 갖췄다는 게 차 감독의 설명. 수원은 2009년 FA컵에서 우승했지만 K리그에서는 10위를 해 자존심을 구겼다. “작년보다 훨씬 즐겁고 재밌는 축구를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차 감독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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