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 말씀대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오노는 오노였다. 아무리 친한파인 양 굴었어도 극단적 상황에 처하자 본성이 또 튀어나오고 말았다.
오노는 14일(한국시간) 밴쿠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한국의 이정수에 뒤져 은메달을 땄다. 레이스 직후 오노는 손가락 6개를 펼쳤다. 마치 NBA 파이널에서 최후의 6번째 우승을 확정한 마이클 조던처럼. 미국의 역대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기록(6개) 선수가 됐으니 영예스런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몸으로 쓴 영광을 입으로 또 먹칠을 했다. 오노 발언은 칼날로 돌아와 이호석과 성시백의 충돌로 은·동메달을 놓쳐 가뜩이나 상심한 대표팀과 국민들의 가슴을 들쑤셨다.
“한국 선수들과 부딪히고 몸싸움이 심했고 어려운 경기였다.”(미 NBC 방송 인터뷰), “레이스 막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처럼 또 다른 실격이 나오기를 희망했다.”(올림픽 조직위원회 정보시스템 INFO 2010) “한국 선수의 방해가 없었다면 금을 딸 수 있었을 것.”(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인터뷰) “단언컨대 (한국 선수들의 레이스는) 내 스포츠 상식에 어긋난다. 여태껏 내 팔과 다리를 그렇게 오래 잡아끈 경우를 겪은바 없다.”(기자들과의 컨퍼런스 콜)….
발언은 다양하나 오노가 전하고 싶은 의미와 의도는 하나로 수렴된다.‘도덕적 우위’를 점함으로서 남은 쇼트트랙 3종목에서 최대 숙적인 한국 선수들을 어떻게든 위축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오노의 ‘도발’로 아군끼리의 충돌로 뒤숭숭했던 대표팀은 분위기를 추스르고 단결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오노를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낸 이정수는 “오노의 몸싸움이 심했다. 시상대에 올라와서는 안 될 선수다. 심판이 못 보면 반칙이 아니라지만 팔을 너무 심하게 썼다”고 정면 비판했다.
이정수는 “(옆에 있는 오노가 거슬려) 시상식에서도 표정관리가 너무 힘들었다”고도 했다. 실제 이정수는 준결승 도중 양팔을 펴는 모션으로 오노의 손동작에 대해 불편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한국 선수의 실격을 바랐다’는 발언에 관해선 해서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는데 쇼트트랙의 금기를 깼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츠 정신 운운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의 금메달을 앗아간 과거를 떳떳치 못하게 여겼다면 꺼낼 수 없는 얘기일 터다.
더구나 오노는 회견에서 제 입으로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보니 (내가) 접촉이 많았던 것 같다”고 해놓고, 한국 선수들의 접촉은 문제시했다.
오노의 쇼맨십은 미국에서는 스타성으로 비쳐지겠지만 당하는 한국 처지에선 ‘밉상’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남자 1000m(21일), 500m(27일), 계주 5000m(27일), ‘공공의 적’ 오노의 입을 다물게 할 첩경은 대표팀의 금메달이다. 밴쿠버(캐나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