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호석아, 다 내 아들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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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6일 03시 00분


쇼트트랙 결승선 앞두고 충돌
銀날아간 성시백 어머니
이호석 사과에 다정히 포옹

이정수 한국팀 첫 金영광

“둘 다 안 다쳤으니 다행”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 씨(왼쪽)가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결승선을 앞두고 아들과 충돌한 이호석을 15일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만나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둘 다 안 다쳤으니 다행”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 씨(왼쪽)가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결승선을 앞두고 아들과 충돌한 이호석을 15일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만나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니다. 둘 다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거 잘 안다.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무시하고 앞으로 남은 경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성시백(23·용인시청)의 어머니 홍경희 씨(49)는 15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을 딸과 함께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훈련이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서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들의 동료인 이호석(25·고양시청)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홍 씨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호석을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홍 씨는 전날 이곳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선을 지켜봤다. 이날 아들은 생애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다. 아들이 10년 넘게 흘린 땀이 결실을 보는 날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안현수(25·성남시청)의 그늘에 가려 5000m 계주에선 금메달을 땄지만 1000m와 150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이호석으로서도 첫 개인 종목 금메달에 도전하는 자리였다.

홍 씨는 큰 기대를 품고 관중석에 앉아 아들이 예선과 준결선을 거쳐 결선에 오르는 당당한 모습을 지켜봤다. 결선에서 아들은 금메달을 차지한 이정수(21·단국대)에 이어 2위를 달렸다. 그 뒤를 이호석이 따라왔다. 이제 20m 정도만 더 가면 아들의 은메달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아들 넘어질 땐 속상했지만… 있을 수 있는 일”

하지만 마지막 코너를 도는 순간 이호석이 추월을 시도하다 아들과 충돌했다. 둘은 한꺼번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펜스로 나가떨어졌다. 너무 놀란 마음에 정신이 아득했다. 아들은 넘어진 뒤 아쉽고 분한 마음에 빙판을 주먹으로 쳤다.

“바로 앞에서 아들이 넘어지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 속이 상했어요. 호석이가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호석이를 이해해요. 경기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속상한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온 홍 씨는 늦은 밤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를 염려하는 전화였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다행히 저는 다치지 않았어요.”

“그래, 수고했다. 푹 쉬어라.”

짧은 대화였지만 홍 씨는 “아들이 먼저 전화도 해주고 많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홍 씨는 이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훈련장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시백이가 다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아들의 훈련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홍 씨는 훈련을 마치고 빙판 밖으로 나오는 아들을 보았다. 어머니와 눈을 마주친 아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홍 씨는 그제야 밝은 웃음을 지었다.

이호석이 다녀간 뒤 홍 씨는 마음의 짐을 덜어낸 표정이었다. 이호석이 원망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홍 씨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대표팀 선수라면 다 아들 같아요. 호석이 때문에 시백이가 넘어졌지만 경기 중에 그런 일은 늘 일어날 수 있다고 봐요. 호석이가 나쁜 게 아니에요. 둘은 15년 가까이 함께 지낸 사이예요. 라이벌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죠. 호석이도 어제 편히 자지 못했을 거예요.”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은 21일 1000m, 27일 5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빛 사냥에 나선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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