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이정수(오른쪽)가 21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막판 역전 우승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세리 머니를 펼치고 있다. 간발의 차로 2위에 머문 이호석도 태극기를 걸쳤지만 고개를 젖힌 모습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제 스타일대로 경기가 안 풀려 처음엔 당황했어요. 하지만 (이)호석이 형이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아졌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치고나갈 틈이 생겼죠. 호석이 형 덕분에 신체 접촉 없이 앞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정수(21·단국대)는 초반부터 치고나가며 승부를 거는 스타일. 하지만 이날은 맨 뒤인 5위로 처졌다가 3바퀴를 남기고 2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바퀴에서 이호석(24·고양시청)을 0.054초차로 제치고 1500m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이정수가 뜻대로 안 된 레이스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상을 차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호석은 언제든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남다른 순발력 이정수의 서전트 점프는 63cm. 50~60cm 사이인 동료 선수보다 높다. 반응시간도 0.24초로 남자 대표팀 중 2위. 그만큼 순발력이 돋보인다. 어느 상황에서든 몸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레이스에서 먼저 치고 나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돌발 상황이 많은 쇼트트랙에서 순간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고 한 발 먼저 움직임으로써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 이날 마지막 곡선주로를 앞두고 이호석을 따라 잡은 원동력이다.
●월등한 파워 171.2cm, 59.7kg인 이정수의 허벅지(둘레 좌 52cm, 우 52.6cm)는 대표팀에서 가장 얇다. 30초 동안 최대의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하체의 힘을 측정하는 '윈게이트 테스트'에서 이정수는 최고 파워 717.72와트로 이호석(736.16와트)보다 작다. 하지만 효율적인 파워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kg당 최고 파워는 12.02와트로 이호석(11.85와트)보다 높았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클수록 전체 파워는 좋지만 효율성에서는 kg당 파워가 더 중요하다.
●탁월한 파워 유지 능력 이정수는 윈게이트 테스트 피로지수가 33.49%로 역시 대표팀 내 1위. 피로지수는 순간적인 파워를 후반까지 끌고 갈수 있는 능력. 지수가 낮을수록 좋다. 그만큼 순간적인 스퍼트를 하고 그 힘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이 좋다. 이정수는 5140cc의 폐활량을 기록해 대표팀에서 가장 높아 지구력도 좋았다. 14일 1500m에서도 우승한 배경이었다.
●균형 잡힌 하체 이정수의 좌우 허벅지 둘레의 차이는 0.6cm. 장딴지 차는 0.1cm. 허벅지의 경우 다른 선수들은 1cm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장딴지도 거의 1cm 차를 보인 것과 다르다. 그만큼 좌우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좌우가 고루 발달하면 힘을 내는 곳이 특정 지점으로 몰리지 않아 그만큼 효율적으로 힘을 쓴다"고 말했다. 한국의 첫 2관왕. 만능 스포츠맨의 자질을 갖춘 이정수였기에 가능했다. 한편 경기 성남의 한 법당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이정수의 아버지 이도원 씨(49)는 아들의 2관왕을 대놓고 기뻐하지는 않았다. 준결선에서 탈락한 성시백(23·용인시청)과 은메달을 딴 이호석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 그는 아들에게 "코치 선생님과 시백이형, 호석이형에게 꼭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며 "시백이가 500m에서는 1등 하게끔 도와주고, 남은 시합도 정정당당하게 임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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