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정수가 파고들었다… 호석은 무리한 몸싸움을 피했다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한국 남자 쇼트트랙 3총사 “금빛 질주는 계속된다”이정수 파워-순발력-균형 3박자의 승리마지막 바퀴서 폭발력 발휘“호석 형 스퍼트 덕에…” 겸손

환희와 아쉬움
‘엇갈린 운명.’ 이정수(오른쪽)가 21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막판 역전 우승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간발의 차로 2위에 머문 이호석도 태극기를 걸쳤지만 고개를 젖힌 모습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환희와 아쉬움
‘엇갈린 운명.’ 이정수(오른쪽)가 21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막판 역전 우승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간발의 차로 2위에 머문 이호석도 태극기를 걸쳤지만 고개를 젖힌 모습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제 스타일대로 경기가 안 풀려 처음엔 당황했어요. 하지만 (이)호석이 형이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아졌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치고나갈 틈이 생겼죠. 호석이 형 덕분에 신체 접촉 없이 앞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정수(21·단국대)는 초반부터 치고나가며 승부를 거는 스타일. 하지만 이날은 맨 뒤인 5위로 처졌다가 2바퀴를 남기고 2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바퀴에서 이호석(24·고양시청)을 0.054초차로 제치고 1500m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이정수가 뜻대로 안 된 레이스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상을 차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정수는 언제든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정수의 서전트 점프는 63cm. 50∼60cm인 동료 선수보다 높다. 반응시간도 0.24초로 남자 대표팀 중 2위. 그만큼 순발력이 돋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든 몸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레이스에서 먼저 치고 나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돌발 상황이 많은 쇼트트랙에서 순간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고 한 발 먼저 움직임으로써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 이날 마지막 곡선주로를 앞두고 이호석을 따라 잡은 원동력이다.

171.2cm, 59.7kg인 이정수의 허벅지(둘레 좌 52cm, 우 52.6cm)는 대표팀에서 가장 얇다. 30초 동안 최대의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하체의 힘을 측정하는 ‘윈게이트 테스트’에서 이정수는 최고 파워 717.72W로 이호석(736.16W)보다 약했다. 하지만 효율적인 파워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kg당 최고 파워는 12.02W로 이호석(11.85W)보다 좋았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클수록 전체 파워는 좋지만 효율성에서는 kg당 파워가 더 중요하다.

이정수는 윈게이트 테스트 피로지수가 33.49%로 역시 대표팀 내 1위. 피로지수는 순간적인 파워를 후반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능력. 지수가 낮을수록 좋다. 그만큼 순간적인 스퍼트를 하고 그 힘을 계속 유지하는 능력이 좋다. 이정수는 5140cc의 폐활량을 기록해 대표팀에서 가장 높아 지구력도 좋았다. 14일 1500m에서도 우승한 배경이었다.

이정수의 좌우 허벅지 둘레의 차이는 0.6cm. 장딴지 차이는 0.1cm. 허벅지의 경우 다른 선수들은 1cm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장딴지도 거의 1cm 차를 보인 것과 다르다. 그만큼 좌우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좌우가 고루 발달하면 힘을 내는 곳이 특정 지점으로 몰리지 않아 그만큼 효율적으로 힘을 쓴다”고 말했다. 한국의 첫 2관왕. 만능 스포츠맨의 자질을 갖춘 이정수였기에 가능했다.

한편 경기 성남의 한 법당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본 이정수의 아버지 이도원 씨(49)는 아들의 2관왕을 대놓고 기뻐하지는 않았다. 준결선에서 탈락한 성시백(23·용인시청)과 은메달을 딴 이호석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 그는 아들에게 “코치선생님과 시백이형, 호석이형에게 꼭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며 “시백이가 500m에서는 1등 하게끔 도와주고, 남은 경기도 정정당당하게 임하라”고 당부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이호석 “후회는 없다… 최선 다한 승부”
고개 숙인채 코칭스태프 포옹
충돌사건 이후 마음의 짐 덜어▼


마지막 코너만 제 페이스대로 돌면 ‘2인자’ 딱지를 뗄 수 있었다. 순간 안쪽으로 대표팀 후배 이정수가 파고들었다. 최근 받은 비난이 마음에 걸렸을까. 잠시 주춤한 그는 무리한 자리싸움을 피했고, 결국 선두를 내줬다.

또 2등. 레이스가 끝난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표정에선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정수가 팔을 번쩍 들며 환호할 때 그는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듯 고개를 숙인 채 코칭스태프를 끌어안았다. 김기훈 감독이 그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잘했다. 누가 뭐라 해도 넌 우리 팀의 기둥이다.”

‘작은 거인’ 이호석(24·고양시청) 얘기다. 그에게는 늘 ‘2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선 1000m, 1500m에서 안현수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당시 안현수에게 지고도 대표팀 내 파벌싸움의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곤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는 대회에 앞서 “2인자란 수식어가 정상에 도전하라는 채찍이 돼 나를 단련시켰다. 이젠 1인자로 올라서고 싶다”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14일 첫 경기인 1500m에서부터 실타래가 엉켰다. 결선 마지막 바퀴에서 그는 성시백(23·용인시청)을 추월하다 엉켜 넘어졌고, 이후 감당하기 힘든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의 미니 홈피는 다운이 됐을 만큼 비난 글로 채워졌다.

쇼트트랙 관계자들은 “약간 무리했지만 앞 선수가 틈을 보일 때 파고드는 건 선수의 권리이자 의무다. 국민에겐 누가 따도 마찬가지지만 선수 개인으로선 메달 색깔에 욕심을 내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입을 모았다.

어쨌든 이호석은 충돌 사건 이후 이날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메달을 따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한 승부였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성시백 스케이트 날 7cm 차이로 또…
준결선서 0.006초 차로 탈락
500m-5000m계주 선전 기약▼


사투 성시백(오른쪽)이 21일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결승선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왼쪽), 샤를 아믈랭(캐나다)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성시백은 2위 아믈랭에게 불과 0.006초 뒤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사투
성시백(오른쪽)이 21일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결승선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왼쪽), 샤를 아믈랭(캐나다)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성시백은 2위 아믈랭에게 불과 0.006초 뒤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이번엔 7cm의 차이가 성시백(23·용인시청)을 울렸다.

성시백은 21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 샤를 아믈랭(캐나다) 등과 다투다 2위 아믈랭에게 0.006초 차로 뒤져 결선 진출이 좌절됐다.

이어 B파이널(패자 결선)에선 실격을 당했다. 두 선수만 남은 경기여서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승선을 앞두고 하지 않아도 될 어깨싸움을 벌였다. 결과는 실격. 만약 이겼다면 6위(2점)까지 주어지는 연금 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4년 전 토리노 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아쉽게 출전권을 놓쳤다. 4년간 다시 땀방울을 쏟아내며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주위에서는 금메달 유력 후보로 그를 꼽았다. 하지만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운이 없었다. 이번 대회 첫 경기였던 14일 남자 1500m 결선에선 결승선을 20m 정도 앞두고 2위로 달리다 동료인 이호석(24·고양시청)과 부딪혀 넘어졌다. 첫 올림픽 메달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에 빙판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1500m 경기에서 아쉽게 메달을 놓친 뒤 경기를 직접 보러 밴쿠버까지 온 어머니 홍경희 씨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1000m 경기를 기대하며 이날도 경기장을 찾았던 홍 씨는 아들이 메달을 따고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공동취재구역에서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자 미소로 화답했다. 아직 그에게 올림픽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27일 열리는 500m와 5000m 계주에서 그는 다시 메달에 도전한다. 가능성도 높다. 김기훈 대표팀 감독은 “성시백은 그동안 500m에서 강세를 보여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1000m와 1500m 결과를 빨리 잊으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비록 첫 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결국 다시 환한 미소를 보일 그를 온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다시보기] 男 쇼트트랙 1000m 이정수 金 - 이호석 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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