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는 여기서 갈렸다… 김연아 프리 재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6일 18시 25분


'경기할 때 가장 두렵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첫 포즈로 음악을 기다릴 때다.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롭다. 빙판 위에서 나는 혼자다.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밀려가 버리고 덩그라니 나만 남는다.' -책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중에서

26일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조곡 F장조의 선율이 흐르고 이에 맞춰 푸른 색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김연아(20·고려대)가 움직인다. 연기 시작 뒤 22초 만에 뛰는 이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아사다 마오(20)가 자랑하는 트리플 악셀-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9.5점)보다도 기본 점수가 0.5점이 높은 여자 싱글 최고의 점프다.

김연아의 최대 무기이기도 한 이 연속 점프의 성공률은 높지 않다.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 전 올 시즌 3차례 참가한 대회의 프리스케이팅에서 깨끗하게 이 점프를 성공한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랑프리 1차 대회 때 뿐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각. 얼음을 지치며 더한 속도를 그대로 왼발 바깥날에 실어 얼음을 찍어 누르며 힘차게 날아오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착빙하자마자 다시 얼음을 찍고 다시 한번 날아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리고 착빙. 깨끗한 성공이다.

빙판을 반대쪽으로 가로 질러 경기장 오른쪽 끝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점프도 만만치 않다. 오른발 날 끝으로 빙판을 찍어 누르며 왼발 안쪽 에지로 도약해 세 바퀴를 돈 뒤 오른발 바깥 날로 착빙하는 트리플 플립. 김연아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가 1988년 캘거리 올림픽 때 바로 이 점프에서 실수를 하면서 브라이언 보이타노에 0.1점 차로 패하며 은메달에 그친 통한의 점프다.

김연아의 경우에도 올 시즌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133.95점의 여자 프리스케이팅 세계 기록을 세울 당시 7차례의 점프 중 유일하게 성공하지 못했다.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에서 첫 두 번의 점프를 모두 성공한 경우는 올 시즌엔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강심장' 김연아는 가장 중요한 무대인 올림픽에서 두 개의 점프를 깨끗이 성공시켰다. ∞자로 경기장을 크게 돌아 왼쪽 끝에서 세 번째 점프를 준비한다.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마지막 더블 루프(2회전)에서 회전력이 좀 떨어지긴 해도 성공이다.

사실상 이것으로 승부는 갈렸다. 이 세 점프에서만 김연아는 무려 5.2점의 가산점(수행점수)을 붙여 27점의 기술 점수를 쓸어 담았다.

4분 9초의 연기가 끝났다. 7차례의 점프와 3번의 스핀, 1번씩의 스파이럴과 직선스텝에서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 완벽한 연기에 스스로도 감동했는지 눈물이 흐른다. 대회에서 연기 끝에 눈물을 보인 것은 처음이다.

전광판에 기록이 뜬다. 기술점수 78.30점에 프로그램 구성점수(예술점수) 71.76점을 붙여 합계 150.06점.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세계 최고 기록.

남자 싱글 선수로 3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국의 토드 엘드레지 씨는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모든 것을 다 갖췄고 오늘 그가 가진 걸 다 보여줬다. 진정한 세계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올리픽 피겨 여자 싱글을 골프에 비유했다. '7언더파를 기록 중인 2명의 우승 경쟁자가 두 홀을 남겨둔 상태에서 김연아가 먼저 12언더로 경기를 마쳤다.' 골프에서 2홀을 남기고 5타를 줄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다시보기 = 김연아, 한국피겨사상 첫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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