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왔다. 하얀 얼음 한 가운데에 그들의 딸이 서 있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눈을 감았고, 어머니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딸이 첫 번째 관문인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무사히 착지하자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하나씩 점프를 해낼 때마다 박수 소리는 계속 됐다. 스파이럴이 지나고, 스텝이 지나고, 마지막 점프인 더블 악셀까지 끝났다. 아버지의 입에서 마침내 외마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됐어!” 어머니는 한 순간 아버지에게 안겼다. 그리고 울먹이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껏 펑펑 울었다.
김연아의 아버지 김현석(53·사진) 씨와 어머니 박미희(51) 씨는 26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세움 복도에 서서 딸의 꿈이 이뤄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앞에 선 관객들 때문에 천장의 전광판을 봐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 씨는 “서서 보는 부모 마음은 딸을 낳아봐야 알 수 있을 거다. 앉아서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서 있었다”면서 “너무나도 바랐던 올림픽이라 아이 엄마와 나는 지금 혼수상태”라고 했다. 또 “나는 한 번도 연아에게 금메달 따라는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쇼트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아이가 후회 없는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영광스런 부모의 주위에는 축하 인파로 가득했다. 김연아에게 최고의 조력자이자 길잡이였던 어머니는 “빨리 방에 가서 현실인지 꼬집어봐야겠다. 연아도 이제 원을 풀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상식은 이제 앉아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