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4계절 링크’ 마련 등 꾸준한 빙상인프라 투자 결실 쇼트트랙 편식 벗어났지만 雪上 종목 노메달 극복 과제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메달 14개(금 6, 은 6, 동메달 2개)를 수확하며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단순히 메달 수만 많아진 게 아니다. 그동안 금메달이 한 개도 없었던 피겨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세계 정상을 밟으며 명실상부한 겨울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 최고 성적의 원동력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데는 금 3개와 은메달 2개를 따낸 스피드 스케이팅이 단연 일등 공신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빙속의 눈부신 성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착실한 준비와 인프라 구축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빙상연맹은 ‘밴쿠버 프로젝트’를 마련해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은 밴쿠버 대회 개막 1년 전부터 캐나다 캘거리와 밴쿠버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현지 적응력을 높였다. 이번 올림픽에 선수들의 스케이트화를 관리하는 ‘날갈이’ 전문가 2명을 동행한 것에서도 빙상연맹의 아낌없는 지원을 엿볼 수 있다.
2000년 1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문을 연 것도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됐다. 이 스케이트장이 생기기 전까지 대표팀 선수들은 겨울에만 이용할 수 있는 태릉선수촌과 강원도 춘천의 야외 빙상장에서 한 철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에 3개의 금메달을 안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이상 한국체대)가 모두 이 실내 스케이트장의 수혜자다.
○ 메달 편식 해소
한국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까지 따낸 31개의 메달 중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1개씩을 목에 걸었을 뿐 나머지 29개의 메달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겨울올림픽에서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올리고도 북미나 유럽 등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이런 메달 편식 때문이다.
메달 편식은 한국이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설 때마다 경쟁국들이 물고 늘어지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2014년 소치 대회를 유치한 러시아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의 메달 편식 해소로 겨울올림픽 유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2개)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땄고 김연아(20·고려대)는 올림픽 사상 첫 피겨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김연아는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겨울올림픽의 꽃 여자 싱글에서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적인 연기로 우승하면서 ‘한국은 쇼트트랙만 잘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단숨에 잠재웠다. 그러나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노 메달에 그친 설상(雪上) 종목은 한국 겨울스포츠의 과제로 남았다. ○ 중국 약진, 일본 몰락
중국은 28일 현재 금 5, 은 2, 동메달 4개로 7위에 올라 사상 첫 10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쇼트트랙에서 4개, 피겨에서 1개의 금메달이 나와 스케이팅 종목에 다소 치우쳤지만 프리스타일 스키에서도 메달 3개(은 1,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설상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중국은 컬링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에 일본은 추락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유일한 메달이었던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로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던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은 3, 동메달 2개로 금메달을 손에 넣지 못했다. 일본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8년 만에 다시 노 골드에 그쳤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박성인 단장 “7년전 ‘밴쿠버 프로젝트’ 비로소 결실” “김동성 사건 겪고 절치부심… 빙상강국 도약 너무나 행복… 꿈나무 키워 위상 지킬 것”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한국 선수단을 이끄는 박성인 선수단장은 8년 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때 마음고생을 톡톡히 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쇼트트랙에서만 4개의 메달(금 2, 은 2개)을 따는 데 그쳤다. 당시에도 선수단장을 맡았던 그는 김동성이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 때문에 금메달을 빼앗기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에 항의하고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경기 외적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밴쿠버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28일 캐나다 밴쿠버 하이엇호텔에 있는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박 단장은 “빙상 3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빙상 강국이 됐다. 단장으로서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김동성 사건’ 등을 겪은 뒤 1년을 준비해 ‘밴쿠버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며 “그 결과 이번 대회에서 쇼트트랙뿐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에서 금메달을 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은 무조건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며 후진 꿈나무들을 빨리 육성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빙상 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뜻을 밝혔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또 이번 대회에서 하위권에 맴돈 설상 종목에 대해 “내가 맡은 종목은 아니지만 단장으로서 말한다면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는 없다. 10년을 내다본다는 마음으로 오랜 투자를 해야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는 2018년경에 경기력이 어느 정도 올라올 것”이라며 장기적인 투자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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