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목 자르는 제스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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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일 15시 12분


외국 스포츠 선수 가운데 이토록 한국인들의 미움을 받는 선수가 또 있을까.

미국 쇼트트랙 간판 아폴로 안톤 오노(28). 그는 올림픽 때마다 한국 선수와 악연을 이어갔다.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레이스 초반 잦은 몸싸움을 하더니 한국 선수들끼리 충돌로 어부지리 은메달을 딴 데 이어 오해를 살 만한 발언과 몸짓으로 비난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오노는 미국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겨울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딴 3개의 메달(은 1개, 동메달 2개)을 포함해 쇼트트랙 선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메달(8개·금 2, 은 2, 동메달 4개)을 목에 걸었다.

오노를 겨울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만났다.

●"한 쪽만 생각하지 않기를"

오노는 지난달 14일 열린 남자 1500m에서 어부지리 은메달을 땄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오노는 손으로 목을 긋는 동작을 했다. 경기 뒤에는 "한국 선수의 실격을 바랬다"고 했다.

오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남자 1500m에선 김동성과 자리 다툼과정에서 화들짝 놀라는 표정과 함께 두 손을 들어올리는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 김동성이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을 당했고 금메달은 그의 차지가 됐다. 한국에서는 오노에 대한 분노가 정점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는 오노는 "정말 그때 충격이 컸다. 그 뒤 4년 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2005년 대회 출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비난하며 나를 죽일 것 같았던 한국 사람들은 환대를 해줬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내가 4년 간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지 허무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실격 발언과 목을 긋는 동작에 대해서 그는 할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목을 긋는 동작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코치에게 선수 한 명이 실격을 당했냐고 물으면서 그런 동작을 했던 것이다. 한국 선수를 가리킨 것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실격을 바란다고 말한 적도 없다. '이호석이 성시백과 몸싸움이 있었는데 그 선수가 실격인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을 뿐이다. 왜 그렇게 언론에 나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 그는 한국인 친구가 많다. 한국에서 나오는 자신의 뉴스에 대해선 친구들을 통해 듣곤 한다. 그는 "한국인들이 날 비신사적인 선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내가 어쩔 수 있겠나. 하지만 이 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쇼트트랙에서 몸싸움은 자주 일어난다. 일방적으로 한 쪽만 보고 판단하지 않기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을 세 번 방문했던 그는 친한 한국 선수가 많다. 누구인지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내가 이름을 말하면 그들이 다칠까봐 걱정된다. 혹시 그들이 나로 인해 비난받고 마음 아파할까봐 이름을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김기훈의 경기 보고 쇼트트랙 시작

오노는 한국과 인연이 각별하다. 그가 쇼트트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선수 때문이다. 12살 때인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인 김기훈의 경기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에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어렸을 때 함께 지내던 친구들 중에도 한국계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익혔다. 그는 "한국 음식과 문화를 아주 좋아한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한국 음식을 자주 사주셨다. 작은 어머니도 한국 사람이다"고 웃었다. 인연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그가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5년 국내에서 열린 대회였다.

오노는 2003년 현 미국 대표팀 장권옥 감독과 전재수 코치를 만나면서 쇼트트랙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만약 내가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진작 쇼트트랙을 포기했을 것이다. 기술, 스케이팅 등 모든 것을 가르쳐줬다"고 고마워했다. 옆에서 듣던 장 감독은 "오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꺼린다. 인터뷰 내용이 자신이 말한 방향과 다르게 변질될까봐 걱정한다. 오노도 한국 사람이 주위에 많으니 한국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선수들은 진짜 강하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한국 선수에게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은 정말 강하다. 그리고 늘 강하다. 이번 올림픽은 어느 때보다 체력은 물론 컨디션도 최상이어서 붙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그는 2007년 한국의 한 실업팀과 몇 달 간 함께 훈련하면서 열심히 훈련하고 집중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고 "한국의 일반 선수들도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는데 나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겨울 스포츠 스타

국내에서 평가와는 달리 오노는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올림픽에 세 차례 출전해 8개의 메달을 따내며 쇼트트랙 통산 최다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어떤 조사에선 스노보드 1인자 숀 화이트를 제치고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로도 뽑혔다. 미국 언론은 이번 올림픽을 중계하면서 그를 가장 비중 있게 다뤘다. 실제로 그와 인터뷰를 추진하면서 미국 언론과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성사시킬 수 있었다.

쇼트트랙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정말 재미있고 어려운 스포츠 중의 하나다.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음 위의 나스카(NASCAR·북미 대륙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개조 자동차경주대회)'같다"고 말했다. 28살인 그는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32살이 된다. 계속 출전하기에는 많은 나이다. 혹시 메달을 더 딸 생각은 없는지 묻자 그는 "아마 소치에서는 스케이트 대신 마이크를 들고 참가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2018년도 마이크를 잡게 된다면 꼭 평창에서 마이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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