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가 현역 시절 보여줬던 ‘예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개인의 예술보다 체력, 조직력, 전술이 강조된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팀 간 전력 차 또한 줄어들었다. 그라운드의 이변은 더는 놀랄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요즘엔 완벽한 강팀도, 완벽한 약팀도 없다. 체력적으로 잘 준비된 팀,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조직된 팀, 상대에 대해 치밀한 연구를 한 팀, 빡빡한 승부 속에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줄 수 있는 팀이 살아남는다. 이 모든 과업의 정점에 감독이 존재한다. 감독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리스 레하겔 독일식 효율축구 접목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한국과 맞붙을 B조 감독들을 논할 때 첫머리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72)이다. 경험으로나 연령으로나 클럽과 대표 팀을 망라한 우승컵 수 면에서나 B조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앞선다. 그리스에서만 100경기를 넘게 치른 이 백전노장이 지향하는 축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일식 효율성’이다. 신체조건이 뛰어난 수비수와 공격수는 레하겔 축구의 필수 조건이다.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축한 뒤 측면 윙 플레이와 세트 플레이를 활용한 간결한 형태의 득점을 노리는 게 요체다. 모든 선수에게 성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결국 이는 단순하지만 지극히 효율적인 독일 축구의 모습을 그리스에 고스란히 옮겨 놓고자 하는 열망이다. 실제로 유로 2004에서 우승하며 그 열망은 화려한 꽃을 피웠다. 물론 2004년의 성공 이후 그리스의 성적은 심한 부침을 겪어 왔지만 ‘옹고집’ 레하겔의 축구는 예나 지금이나 불변이다. 나이지리아 라예르베크
조직 앞세운 안정성
나이지리아 신임 감독 라르스 라예르베크(62)는 A매치 지휘봉을 잡은 횟수에서 레하겔과 어깨를 나란히 할 뿐 아니라 스타일도 비슷하다. 우선 각종 국제대회 본선에 오른 경력에서 최근 세계 축구에서 라예르베크에게 필적하는 이를 찾기 쉽지 않다. 그가 공동 감독을 지낸 시절부터 스웨덴은 유로 2000,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로 2004, 2006년 독일 월드컵, 유로 2008까지 다섯 대회 연속으로 본선행을 이뤘다.
스웨덴 시절 라예르베크 축구의 키워드는 ‘안정성’이었다. 팀플레이와 조직력에 역점을 둔다. 현재 나이지리아가 모자란 바로 그 부분이다. 어쩌면 라예르베크는 나이지리아의 약점들을 잘 보완해줄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은 시간이다. 그가 나이지리아에 얼마나 빨리 녹아들 수 있을지, 나이지리아의 문제들을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그는 지금껏 스웨덴 이외의 장소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합리적 멤버구성 주목
아르헨티나의 수장 마라도나는 월드컵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미롭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동안 그가 보여 온 모습은 좌충우돌, 천방지축 등으로 표현되기에 적당하다. 지도자로서 확실한 성장에 이르지 못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마라도나는 대표선수 선발에서 한동안 원칙과 일관성을 결여했을 뿐 아니라 경기 중 요구되는 전술 변화에도 무관심에 가까운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지역 예선같이 끝없이 바닥을 친다고 확신하면 곤란하다. 그는 한동안 무시하던 선수들을 대표팀에 선발하기 시작했다. 공격수 곤살로 이과인을 불러들인 데 이어 최근에는 수비수 월터 사무엘을 합류시켰다.
이런 모습들을 감안하면 결국 그도 월드컵 본선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멤버 구성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일단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선수단의 흥을 돋우는 역할에는 마라도나가 꽤 잘 어울린다. 예측 불허의 인물에게 운이 따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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